정독

by 금교준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펼치기까지 몇 가지 과정을 넘어야 한다. 제목이 눈에 들어와야 하고, 목차가 흥미로워야 하고, 무엇보다 내용이 궁금해야 한다. 대충 얼버무려 아는 정도가 아니라 자세히 알고 싶어 져야 하는 거다. 이미 본 내용이라 호기심이 곱절로 작아지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는 사람처럼.


어느 책이든 처음 읽을 때는 한 장, 한 글자씩 정성을 담아 읽는 편이다. 내용을 내밀히 뜯어봐야 한 번이라도 더 떠오를 까 봐. 그렇게 별안간 연상된 내용의 속내가 갑갑해서라도 찾아보게 될 것 같아서. 그것이 여러 번 보면 내 것이 된다는 말을 믿는 사람의 충실한 행동일 테니까.


감정이 시큰해지거나, 눈에 띄는 표현이 심어져 있거나, 구조가 단단한 글을 보면 아랫 섶을 접어둔다. 본래 두께보다 두꺼운 책을 보면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세상이 힘겨워 고개를 좌우로 흔들 때도 덩치가 큰 책은 금방 시선에게 잡힐 테니까. 읽으면 위로받을 수 있을 거란 말을 그렇게라도 건네고 싶으니까. 그럼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당신은 책이다. 배울 게 굽이굽이 쌓여있는 종이 다발. 섣불리 속독해버리면 불현듯 익숙해질까 봐 조심스러워지는 도서. 가슴속에 남은 다정함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긁어모은 채로 읽으면, 난데없이 사랑을 채워 넣는 서적. 선반에 꽂힌 다발의 책 보다 곱절로 사랑스러운 존재. 그게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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