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이 보였다. 보통의 다세대 주택이라면 공동 현관으로 쓰고 있는 통유리문. 오래간만에 집 밖을 나온 사람으로서 몇 초간 유심히 응시한 것치곤 사소했다. 독립하고 나서 빈번해진 안 좋은 습관은 방 안에 틀어박히는 일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 밤새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 굳이 바깥공기를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천지였다. 그런 삶에서 별안간 나왔으니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 유리문처럼 일상적인 것에 이목이 쏠린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종종 사물은 특정 사람과 연관되기 시작하면 그것을 볼 때마다 누군가 아른거리는 성질을 갖기도 했다. 그러니 유리문을 마주한 순간 그리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이번엔 S였다. 그녀는 유리문만 보면 등장하는 단골 인물이다. 그녀와 나는 같은 사람의 팬이었다는 점에서부터 공통점이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 끝말이 ‘유’라는 점도 유리문 하면 그녀가 떠오른다는 데 다소간 일리를 더한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그녀와 내가 전신 거울 대신 사진 배경으로 주로 쓰던 게 유리문이라는 사실이다. 거울보다는 흐릿해서 모호함이 주는 신비감을 연출할 수 있고, 창문보단 크니까 전신의 모습이 잘 어울리던 우리를 담기엔 더없이 좋은 배경이었다. 우린 홍대를 자주 가곤 했는데 그곳엔 다세대 주택이 즐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옆면이 통유리창인 카페 앞에서 관계를 끝냈다. 완곡한 이별통보였다. 그녀는 며칠은 고민한 듯 나와 자신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꽤 오랫동안 나열했다. 헤어지고 싶은 이유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잡을 힘이 내겐 없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내가 선물을 주려고 계획한 날이기도 했다. ‘헤어지더라도 이건 가져가.’ 하며 그녀의 손에 종이가방을 쥐여줬다. 이별하는 마당에 준비한 선물마저 도로 가져가는 모습이 너무 비참할 것 같아서 한 행동이었다. 말없이 뒤돌아선 그녀가 통유리창에 비쳤다. 그녀의 얼굴 부근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흐릿한 탓에 도통 확신할 수가 없었다. 눈물인지 창에 맺힌 물방울인지. 지금이라도 달려가 안아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멈췄다.
유리문만 보면 그녀가 생각나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시절은 유효기간이 제법 길다던데,라고 곱씹었다. 눈앞에 유리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