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모마일 티백

by 금교준

새 직장으로의 출근 전날. 하도 긴장한 탓에 한숨도 못 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고로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걱정하는 건 되려 불안감만 가중하는 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근심이 쌓이는 일은 내 마음대로 중단할 수 없는 무력을 지녔다. 잘할 수 있을까. 같이 일할 사람들은 어떨까.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을 때마다 그런 생각들이 캄캄한 배경 위에 툭-하고 튀어올랐다.


현존하는 기술력으로는 시간을 멈출 순 없다. 이대로 밤이 지나면 애석하게도 아침이 올 거였다. 불안정한 사람은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던데, 내가 딱 그런 모양새였다. 한참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출근 시각이 임박했다. 간단히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옷을 입는다. 차에 시동을 켜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액셀을 밟았다. 일련의 과정 동안 자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첫날의 설렘과 우려가 머릿속이 텅 빈 사람의 모습을 만든 거였다.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소식은 그동안 하늘이 뚫린 것처럼 내리던 비가 그쳤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은 하루 운세 어플에서 인적 사항을 입력하는 것보다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곤 했다.


지난 삶 중에서 날씨가 말해주는 그날의 운세는 비교적 적중률이 높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새로운 동료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가슴께에 번민이 가득 쌓여있었는데, 그걸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과 나는 작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금세 가까워졌다.


“작가들은 정말 사물을 보면 저절로 영감이 떠오르나요?”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내가 말했다. “저는 사물을 골똘히 관찰하면서 쥐어짜는 편이에요. 작가라고 해도 항상 창의력이 풍부한 건 아니거든요.”


그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항상 영감이 툭툭 떠오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예를 들어주겠다며, 티백을 가리키곤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는 농도. 투명한 색에서 특정 색상으로 변하는 성질. 아무 향이 없던 물이 허브나 과일의 향을 지니게 되는 현상 같은 것들을. 그러다 자못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 “그러니까 티백은 지난 사랑을 닮은 겁니다.”라고 했다. 빠져있을수록 물의 농도를 진하게 만드는 티백처럼, 지난 사랑도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리워지는 거라고. 점점 강렬해지는 거라고.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요즘 들어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 어쩌면 연인이라고 불렀지만, 이젠 남보다도 먼 사이가 됐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 그가 반응했던 게시물의 경향을 따져보면, 분명 사랑에 빠지는 글보단 누군가를 추억하는 글을 선호하고 있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것보다 선명해진다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물이 그녀일 거라는 추측이 틀림없는 사실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짙어질대로 짙어진 캐모마일 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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