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 다섯 명을 보는 거래. 누군가 조언해줬던 말이었다. 유명한 강연에서 들었다던가. 내 경우를 요목조목 뜯어보자면. 세월이 흐를수록 변했다. 십 년 전이나 오 년 전 그리고 지금. 게임처럼 오락성 짙고 가벼운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술 마시며 너도나도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 이제는 책을 즐겨 읽거나 글을 습관처럼 쓰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말은 새로 긴밀해진 사람이 생긴 만큼, 다신 못 보게 된 사람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꼽아보자면. (본론까지 조금 돌아가 보자면) 나는 본래 물을 무서워했다. 엠티 장소로 바닷가가 지명된 걸 까무러칠 정도로 싫어했던 일만 떠올려봐도 자명하다. 같이 놀러 간 친구들이 물질을 하며 즐거워할 때, 혼자 술병 난 것처럼 연기하면서 모래밭에 파묻혀있던 기억이 난다. 영과 함께였는데. 당시 나는 그 애와 사귀냐는 말을 귀에 못 박히듯 들었다. 버스를 탈 때면 항상 옆좌석에 앉고. 억지로라도 같은 숙소를 배정받고. 심지어 학교 수업을 들을 때도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서로의 옆자리를 미리 점해두는 걸로 유명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 누군가 진지하게 정말 그런 사이 아니냐, 물었을 때 영이 말했다. 차라리 바다에 빠질게요. 주변 사람들은 그 애의 말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와 영은 그 뒤로도 비슷한 질문이 들릴 때마다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는 것처럼 굴었다. 사람 마음이란 거. 자기 멋대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영은 섣불리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이 또한 세월이 가져온 변화의 일부였다. 바다를 보면 그 애가 생각난다. 옛날에 이거 없으면 죽고 못 살았었다, 할 수 있는 게임. 그때 그런 진상을 부렸었다니까, 할 수 있는 술집. 이 책 한 번 읽어보세요, 할 수 있는 책처럼. 바다를 보면 자꾸 아련한 눈빛을 짓게 만드는 이유가 한 가지 생긴 거였다.
차라리 바다에 빠질게요. 바다라는 단어가 내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