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by 금교준

영원토록 사랑할게. 그 문장이 빈의 목소리로 읊어질 때마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서도 내 손을 꼭 잡아줄 사람은 그녀일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고심한 게 아니면 입 밖으로 꺼내는 법이 없었으므로. 적어도 수십 년 동안 그녀만을 만나고 그녀만을 생각하고 그녀만을 좋아할 거라고 되뇌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그녀는 나도, 하며 언제까지나 함께 할 사람처럼 웃었다.


빈은 친구가 속했던 동아리의 매니저였다. 겨울방학이었나. 동아리 공연을 앞두고 홍보를 도와주러 갔을 때 처음 만났다. 허리께까지 오는 갈색 생머리, 동그란 눈, 짙은 애교살, 기분 좋은 샴푸 냄새,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한 사교성까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그녀보다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반면에 나는 전신을 감싸주는 고양이 잠옷을 입었었다. 적잖이 부끄러웠던 걸 고려하면 그녀가 까마득히 먼 존재로 느껴졌던 건 당연한 거였다.


너희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아. 친구는 그런 느낌이 든다는 연유만으로 빈과 나를 이어주려 애썼다. 식사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네가 좋아. 나는 목에 3D 안경을 고스란히 걸친 채로 고백했는데, 그녀는 연인이 된 이후에도 간간이 그때를 상기하며 배꼽을 잡았다. (그녀는 내가 고양이 잠옷을 입었던 때를 떠올리면서도 마구 웃었는데 어쩌면 그런 모습이 그녀를 사로잡은 걸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습관을 특히 좋아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신발을 벗고 내 두 다리 위에 자신의 두 다리를 올려놓았던 일.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내 문제집 여백에 배고파, 라고 적으며 속삭였던 일. 카페에 갈 때마다 인생 사진 몇 장은 건지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일.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나와 다른 이유는 내 반쪽이기 때문이라고 여겼었다. 중간에 수직선이 그어진 원을 예로 들면 조각과 조각은 정반대에 있으니까.


문득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렸다. “영원한 건 없다고 입버릇처럼 넌 말했었지.”* 그래, 그때도 영원한 건 없었지. 가운데가 잘린 원은 어긋나기도 쉽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시절이었다. 앞으로 우린 남인 거야. 연락 와도 안 받을 거니까 하지 마. “아직도 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 속에 있어.”* 노래가 마치 내 이야기를 듣고 만들어진 것 같다, 고 생각했다.



*“영원 속에” - 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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