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삶의 의욕을 모조리 잃어버린 기분. 그런 걸 느끼는 날이면 좋아하는 것들을 봐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다. 무색무취의 세상이 된 것 같다. 밤길을 걸으며 누군가 나를 무색무취로 느낀다면 무슨 기분일까를 고심해본다. 썩 좋지는 않을 거였다.
수현. 나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람. 벚꽃이 흐드러진 여의도 공원에서 그녀가 보였던 행동들이 하나둘 상기된다. 손 잡으려 하면 멀찍이 떨어져 걷고, 사진 찍으려 하면 뒤돌아 버렸던 일들. 낡은 원목 테이블에 백열전구가 달려있던 카페의 옛집 냄새. 뭐 이런 곳을 데려와, 하는 쌀쌀한 목소리. 테이블 위의 핸드폰, 화면에 띄워져 있는 메시지, 낯선 남자의 이름, 희미하게 생겼다가 사라지는 미소, 나를 향한 무감한 시선과 건조한 한숨 소리.
종종 생각지 못한 때에 알아채게 되는 사람 마음이 있다.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내가 아무리 눈치채지 않으려 해도. 그날의 그것은 필연의 결을 닮아서, 나는 기어코 그녀의 마음을 느껴버린 거였다. 수현의 흔들리지 않는 홍채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확신했구나. 우린 더 이상 추억을 만들 수 없겠구나. 이번 연애도 실패했구나. 이루고 싶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거. 정말 있구나.
밤공기가 쌀쌀했다. 무언갈 그리워하는 거 빼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