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에 갇힌 할머니의 축축한 전화 한 통

세월을 견딜수록 젊어진다는 건 어쩌면 선물일수도 있겠다

by 금교준


“오늘 왜 안 와?”


잠에 취한 채 억지로 노트북을 열어 넷플릭스를 틀어놓고는, 멍하니 앉아있던 오후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울릴 일 없이 한가한 벨소리가 잠을 깨우듯 울어댔다. 친할머니였다.


“준아~ 오후가 다 됐는데 왜 아직 안 와? 할머니는 준이 보고 싶은데..”


들어보니 마침 할머니께서 본집에 와계시다는 것이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 못한다고, 못 봐서 아쉽다는 말만 건넸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한마디가 아빠, 엄마를 기다리는 10살짜리 아이의 어리광 같이 들렸다.

친할머니가 내게 각별한 이유


내가 우리 친할머니의 이야기를 써보려는 건 친할머니가 단지 아프시기 때문이 아니다. 중학교 때 있었던 일련의 해프닝 때문에 더 각별하기 때문이다.(할머니는 이름에 ‘별’ 자가 들어가시는데, 그래서인지 ‘특별’, ‘각별’ 등의 단어들을 좋아하신다.)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보통 사이가 아니셨다. 아침마다 울리는 잔소리들은 내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고, 내 뇌리에는 시어머니와 맏며느리의 관계는 ‘삐그덕거리는 관계’라고 정의됐다. 당시의 나는 호통의 방향이 일방적이라는 생각에 철없는 적대심을 들이밀었었는데, 할머니께서 연을 끊자는 다짐까지 받아내려는 상황까지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급박한 상황이었다. 물론 끝내 나는 연을 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것만은 피했었다.) 이후 할머니는 오히려 손자가 효자라고, 엄마는 좋겠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쏟아부으셨지만.

물론 지금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플 때 옆에 있거나, 대화도 많이 나눠서 좋은 관계가 됐다. 극단적인 상황이 오히려 내게 그녀를 더 긴밀하게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마침내 지금은 우리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손자 중 한 명이 됐다. 어찌 됐든 친할머니와 있었던 해프닝 덕분에 서로 더 각별하다.

우리 할머니는 지금 암 투병 환자시다. 3년 전 겨울, 폐암 말기 판정과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당시에는 내가 군에 입대하기 직전이라, 혹여라도 훈련받을 때 가버리시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운 좋게도 받고 계신 항암치료가 몸에 잘 맞아서 여즉 잘 견뎌내고 계시다. 물론 그마저도 효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할머니는 이왕 가는 거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다며, 큰아들과 작은아들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진격하신다. 그동안 못 보던 친척들도 만나고, 평소 전화로만 인사하던 딸들네에 가서 며칠 밤을 머무르시고… 중요한 건, 할머니에게는 소중하고 긴박한 이 순간을 코로나 따위가 막고 있다는 거다.


원치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의 생명력이 옅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매번 볼 수 있던 강한 언성은 이제 역사로만 남았고, 축축한 눈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 그녀의 눈을 응시하다 보면 눈빛의 강렬함이 살아있었는데, 약효 대신 얻은 퉁퉁 불은 몸과 함께 처진 눈 끝은 그녀마저도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몇 마디 나눠보면 나는 아직 건재하다고, 여기 살아있다고 외치시며 강인함을 뽐내신다. 그럴 때마다 ‘너희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라는 당신의 서툰 애정표현을 대신하는 것만 같다.. 그런 그녀와 오늘 나눈 통화에서는 강인함이 결코 느껴지지 않았다. 10살짜리 아이가 아빠에게 왜 아직 안 오냐며 보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장면만 떠올랐을 뿐이니까.


이별을 준비한다는 건

지난 3월 우리 집안에는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하필 이것도 코로나가 만연할 때다.) 외할머니가 소천하신 일이다. 이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줬지만, 나름 씩씩하게 살아나가시던 친할머니에게는 가히 핵폭탄보다 강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나 보다. 애써 외면하려는 ‘죽음’이 보였기 때문일까. 친할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쉽게 보이지 않으시던 눈물을 보이셨다. 왜 그렇게 아프게 보냈냐고, 왜 그리 외롭게 보냈냐며.. (우리 어머니는 그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한다. 그토록 강하시던 분이니까) 삶에 서툰 내가 감히 짐작해보건대 단지 ‘사돈어른의 죽음’이 주는 무게감 때문만은 아닐 거다…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그녀가 점점 어린아이가 된다는 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선물해주려는 게 아닐까. 그래서 강한 어조를 축축한 어조로 바꾸는 거고, 혼자서도 당당하다는 포부를 더 이상 혼자서는 힘들다고 표현하는 건 아닐까. 마치 외할머니가 가시기 한 달 전 내 손을 꼭 잡았던 것처럼. 나를 빤히 응시했던 것처럼. 그녀도 나를 담아 저장하고 싶어서, 뚫어지게 쳐다봐두고 싶어서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코로나가 잡혀 이동이 자유로워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그만큼 그녀를 생각하고 소중함을 간직하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만 같다. 다음에 만나면 스마트폰 따위는 제쳐두고 그녀의 얼굴을 응시해두라는. 후회하지 않도록 그녀에게 내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라는. 그런 눈물 나도록 따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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