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시간, 좀체 줄지 않는 불안
오늘 아침, 모닝콜 대신 제법 혼란스러운 전화가 있었다. 암과 열심히 싸워주고 계신 할머니로부터의 전화였다. 항상 용건이 끝나면 먼저 탁! 하고 끊을 정도로 쿨하신 우리 할머니의 전화. 그런데 어쩐지 오늘만큼은 그녀의 물음이 심상치 않다. 오늘은 7월 27일이다. 그런데 8월이란 단어가 나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 얘기는 가족들에게로 속속들이 퍼져 나갔고, 이내 폭풍처럼 내 머릿속을 때렸다.
아침 9시쯤이었나? 화장실 거울을 봤는데 아뿔싸. 아무렇지 않은 척 씻으러 들어왔는데 눈이 이미 빨갛게 변색됐다. ‘안 되겠다. 가야겠다.’ 그 결심을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주히 씻고, 옷을 입고, 차에 오른다. 왈칵.. 네비를 찍고, 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는다. 다시 왈칵.. 핸드폰을 들고, 그녀를 찾고, 전화를 건다. 또 한 번 왈칵..
할머니는 뭐가 그리도 좋으신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셨다. 분명 손주 볼 생각에 떨리시는 걸 테야. 아들보다 더 좋다던 손주의 목소리가 그리웠던 걸 테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차근차근 악셀을 밟아갔다.
오늘 할머니의 첫인상은 행복 그 자체였다. 손주가 보러 온 게 그리도 좋으신지 연일 함박웃음이다.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두려고 가만히 응시했다. 어느새 내 앞에 쌓인 음식들이 보였다. 어느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요리 부럽지 않게 차려진 음식들. 치킨, 비빔밥, 문어숙회, 아이스크림. 어느 하나 인과관계는 없지만. 나는 묻는 일은 고사하고 그저 먹는 일만 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면 잔뜩 부은 손,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 파랗게 멍든 주사자국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 마리, 두 그릇, 한 접시, 한 개. 혼자 이 많은 걸 어떻게 비울 수 있었겠냐마는. 필히 ‘사랑’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된 ‘그리움’때문일지도.
식사가 끝나곤, ‘옛날 옛적에’가 시작됐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무척 가난했던 얘기, 그래서 나와 선이를 한 명씩 할머니-할아버지 댁, 부모님 댁에서 나눠 키웠다는 얘기.(나는 쌍둥이가 있다. 그리고 그를 ‘선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할머니께서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얘기가 있다.
갓난아기 때 우리 부모님이 너무 힘들게 살았어서 나랑 선이를 따로 키웠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 명은 부모님이, 한 명은 할머니께서 데려가 키우셨는데 선이만 데려가면 부모님한테 돌아가고 싶어서 온갖 이쁜 짓은 다했단다. 엄마 품으로 보내달라고 필사적으로 윙크를 했다지.. 반면에 나는 아무 말 않고 묵묵히 지냈단다. 종종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싸우시면 노랗게 변한 기저귀를 찬 채 두 분을 한 방으로 모셨다던데..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내가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서 손을 꼭 잡고 할머니방으로 온단다. 그러곤 할머니 옆자리를 탁! 탁! 하고 치더라는 거다. 싸웠어도 옆에서 자라고, 같이 있으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불을 깔려고 아등바등하면서..
“그때는 네가 할아버지랑 나를 돌본 거야. 너 덕분에 우리가 화해할 수밖에 없었거든. 그때 네가 3살 때였어.”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내가 그 상황이라도 3살 배기 아이가 손 꼭 잡고 탁탁! 훈계하면 미소가 나올 것 같으니까. 그대로 화해하게 될 것 같으니까. 어쨌든 우린 그렇게 ‘옛날 옛적에’로 거진 두 시간을 떠들었다.
오늘은 할머니가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하시는 날이었다. 이미 허리와 어깻죽지에 전이된 암은 자칫하면 하반신을 못 쓰게 만들 수도 있기에 단숨에 하기로 한 치료. 병실을 배정받고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출근’이라는 냉혈한 단어 때문에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고작 두 음절의 단어에 무너져 버리고야 마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대신 오늘은 한 가지 약속을 한다. 적어도 후회를 만들지는 말자는 약속을.
"할머니 또 올게요. 제 책 직접 사고 싶다고 하셨죠. 곧 나오니까 잘 견뎌서 같이 사러 가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