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녀는 종종 그런 담담한 문체로 운을 띄우곤 했다. 들을 때마다 뇌리에 깊숙이 박혀 긴장감을 확산시키는. 스위치처럼 툭-하고 나를 눌러 고개를 홱 돌리게 만드는 어투로. 그러곤 동그란 눈을 지으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좋아해요, 같은 말을 던지며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입이 살짝 벌어져서는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모양이. 예뻐요. 어쩌다 그 말까지 연달아 듣는 날엔 그토록 상냥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종일 울렸다.
그녀와 멀어지기 시작한 건 내 고집 때문이었다. 한번 그렇다고 결론지은 일은 반드시 그래야만 했으므로. 이렇다 저렇다, 라는 생각을 기어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므로. 더구나 사소한 문제들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다투기 시작하면 누구 한 명이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 때까지 싸움이 끝나질 않았다. 사랑하는 사이라곤 믿지 못할 정도였지. 그녀의 입에서 지쳤어요, 란 말이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거였다.
그녀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게 누구의 일이든 나와 상의하길 원했다. 누군가 위로가 필요하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면서 공감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영 다른 삶을 살았고, 과하리만치 주관이 뚜렷했던 탓에 그녀의 생각들을 받아들이기가 되려 힘들었다. 그러니까 위로나 공감 따위를 적절히 해주질 못했다는 의미였다. 의지할 수 없는. 뜻을 굽히지 않는 연인.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녀가 무언갈 결단한 듯한 눈빛으로 말했던 날을 기억한다. 일순간 뻐근할 정도로 고개를 홱 돌렸던 장면을. 동그랗던 눈시울에 슬픔이 한가득 찰랑이던 모습을. 벼랑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듯 바닥을 향해 잔뜩 기울어있던 입꼬리의 모양을.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능동적으로 알리려는 듯 코안이 뻑뻑해질 정도로 건조했던 단풍의 냄새를.
미래는 과거를 죽일 수 없어도 과거는 미래를 죽일 수 있다는 말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상기되는 날에는 그녀를 찔렀던 말로 내 가슴께를 난도질하고 싶은 기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