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위 하트가 흐리다. 선명한 경계를 두르고 있던 우유 거품이 어느샌가 형체를 잃고 무너진 것이다. 2021년이 되면서 의미를 상실한 것들을 생각한다. 2020년도 다이어리, 2020년도 캘린더, 2020년도의 생일, 해가 지나기 전에 만나자던 약속...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었다. 카페 창틀에는 크리스마스를 예고하는 물건들이 치렁치렁 매달려있다. 두 달만 지나면 2021이란 숫자와 긴밀했던 것들도 다소간 가치를 잃겠지. 각별했던 것들이 단순한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된다니. 날짜를 고쳐 적으며 써먹던 2020년도 다이어리를 몇 번 쓰다듬는다. 올해에도 이루지 못한 목표가 예상보다 많다는 것을 자각한다. 아직 한 해를 성취로 채우는 일이 버겁다. 겨울은 미숙을 실감하는 계절, 하고 곱씹는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미숙했던 겨울을 떠올린다. 각별한 만큼 서투르게 대했던 사람이 있었지. 그녀와 첫 술을 마셨던 밤이 있었고, 그 다음날 우린 헤어졌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굴어놓고 그날만은 서운했던 일들을 모조리 쏟아냈던 날이었다. 그녀는 그걸 듣고도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겠냐, 고 했다. 그렇겠지. 나라도 마냥 좋아하던 연인이 이제껏 힘들었다는 걸, 실은 무척 속상했다는 걸 폭탄 터뜨리듯 말하면 적잖이 당황스러울 테니까. 그녀의 메시지는 냉담했다.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입술. 온몸을 둘러싼 한기. 무슨 변명을 들어도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 그러니까 나로선 그대로 몸을 돌려 돌아서기만 하면 의미를 잃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고, 그럴 것만 같은 예감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통유리창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바닥만 바라보던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누가 보면 고백하기 직전인 것으로 오해할만한 고요한 몸짓, 하지만 겨울 공기보다 더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와 여자를, 나는 기억한다. 기억한다, 고 말하면 너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의 의미를, 상실한 기억을 기억한다는 것을 너는 생각해본 적 있니.
완전히 섞여 단색뿐인 라떼를 한 모금 마신다. 도형이었던 우유 거품을 상상한다. 겨울은 미숙을 실감하는 계절, 나는 아직 한 해를 성취로 채우는 일이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