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작중 인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꺾인 팔레노프시스에 모종의 복선을 느낀다거나,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간 사람이 드레스 입은 모습을 무력하게 상상하거나*, 누군가 세상을 무섭고 막막한 태평양처럼 느낀다고 할 때 호랑이가 되어주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처절하게 가슴 아픈 순간을 찾아 읽는 짓을 왜 하느냐 묻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통뿐인 삶을 위로해주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세상에는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을 찾아다니는 작가들이 있다고. 나는 대답했다. 혼자뿐인 방 안에서 무언가 읽는 일은 온전히 무방비한 순간을 야기하므로, 앞서 언급했던 사건들이 겹치는 날엔 유례없는 폭우처럼 눈망울이 흘러넘치기도 했다.
쓰다 보면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일이 적잖다.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사람을, 무방비했던 눈을 무심코 찔러버렸던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고작 몇 문장의 글로 그 사람을 적어도 될까 싶어지는 것이다.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는 일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슬픔의 무게를 자칫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는 일이 되어버릴까 봐.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죄책감이 짙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계속 적어야만 한다, 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란 말이 그에게 읽힐 가능성이 약간은 생기기 때문에. 나는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읽었던 문장을 따라 쓰고 싶어진 적도 몇 번 있었다.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고 싶은 기분이 되고, 한 번 더 읽으면 수첩 같은 곳에 일일이 적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글귀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적은 문장이 내 심정을 또박또박 발음할 때. 뒤에 적을 문장들처럼 내 마음을 몇 번이고 비집고 들어올 때. 두 눈을 무방비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을 상기시킬 때. 그 갈망은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나는 오늘, 슬픔은 누군가에겐 자랑이 될 수 있다. 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장편소설
**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장편소설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