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인분을 남겨놓는 버릇에 대해 생각한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사람을 위해 꼭 그만한 분량을 남기는 일을. 누군가의 이름을 그가 없는 곳에서도 모종의 목소리로, 혹은 언어로 떠올리는 상황을. 말하자면 그 순간, 그는 연필 같은 존재가 되는 거다. 요즘엔 어딜 가나 책과 노트를 한 권씩 들고 다니는데, 여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게 바로 연필이다. 감싸 쥐었을 때의 촉감이 볼펜보다는 한결 따뜻하고, 슥 그었을 때 오방이 꽉 막힌 듯한 먹색 잉크보다 약간은 무르고 부드러운 흑연의 입자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각별하지. 연필처럼 온몸에 친근함을 두르고 사는 거.
이미 내 해마에 자리한 사람들의 얼굴이 영사기에 물려 돌아가는 필름처럼 빠르게 스친다. 그렇게 누군가의 머릿속에 터를 잡는 일을 나는 원했다. 우정, 사랑, 가정. 뭐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단어를 곱씹다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되기를. 그러나 반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은 서툴렀다. 살다 보면 친근한 동의보다 친근한 거절이 더 어렵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지. 동전엔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반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특정한 면이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거였다.
사람은 세 가지 경향성을 지닌다고 했다. 끊임없이 퍼주는 사람, 끝없이 받으려는 사람, 받은 만큼 주는 사람. 더 흥미로운 사실은 주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다는 연구 결과다. 그 자료에 기반하자면 그중에서도 거절이 필요할 땐 거절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나는 거절은 못 하면서 자꾸 주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또 누군가에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주어서 몇몇을 잃었다는 말이 됐다.
당신은 너무 물러서 탈이라 했던 사람을 기억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자신과 보낼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해줘야 하느냐는 말을. 자신은 언제 바라봐 줄 거냐는 말을. 왜 다른 사람들의 말은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느냐는 말을. 이제야 시간을 들여 곱씹는다.
친근함을 두르고 사는 거. 그 덕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여러 번 발음되는 거. 동전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다는 거. 다음번엔 그런 것들을 좀 더 적절히 섞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