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기다렸다. 발걸음이 바쁜 사람, 한쪽 손에 커피를 든 채 일 얘길 나누는 사람, 휴대전화 너머로 언성을 높이는 사람, 가게 문을 열며 허리를 곧게 펴는 사람... 그런 보통의 인파 속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지정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찾고 있는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 것인지를. 아니, 나타난다는 것조차도 소망에 불과했다.
여기라면 한 번쯤 마주칠 수 있을 거야.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를 보기 위해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가 점찍어뒀다는 장소가 제법 됐지만, 기억나는 건 이곳이 유일했기 때문에. 같이 걷고 싶다던 길목, 맛있을 거 같다던 떡볶이집, 녹차 프라페가 유명하다던 카페. 그런 걸 순차적으로 떠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녀가 짠하고 나타날 것 같았다. 그곳에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만큼은 신을 믿고 싶었다. 죽어라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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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질 무렵의 구청 앞 광장은 번잡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번쩍이는 간판들과 삼삼오오 모여든 인파. 심지어 사람들의 체온 덕에 따뜻하기까지 했다. 사는 기분. 나는 그곳을 지나치는 순간만큼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낀 적이 없다. 얼마 전의 그 일만 아니었다면.
언제부턴가 매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출퇴근하는 것처럼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그는 요지부동으로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여러모로 둘러봤다. 항상 같은 점퍼를 입고, 항상 같은 표정으로. 이별한 사람을 잊지 못해서, 모종의 사고를 당해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아서... 등등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잘도 만들어 날랐다. 술안주로, 디저트로, 그냥 심심풀이로. 그런 건 입술만 몇 번 움직이면 되는 일이라 전혀 번거롭지 않았으므로. 더구나 가십거리로 삼았다가도 거리 안팎으로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에 금방 묻혔다.
그러나 그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쌓일수록, 씻을 수 없는 죄가 머릿속에 켜켜이 쌓이는 것만 같았다. 그를 지나칠 때마다 초점 잃은 동공이, 수축하지 않는 홍채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분명 그와 같은 눈빛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거울 속에서. 숨을 쉬는 일조차 죄처럼 여겨질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때 나는...
광장 구석에는 떨어진 낙엽을 쓸어둔 봉지가 널따랗게 쌓여있었다. 그 옆에선 한 남자가 누군갈 기다리고 있었고 바람은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