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당신은 대화하면서 상대의 눈빛을 낱낱이 살펴봤습니까. 그가 서투른 입술을 움직여 발음하는 낱말들을 조용히 귀에 담았습니까. 그러다 귀여운 구석이 보이면 양쪽 눈을 호 모양으로 둥글게 감으며 꺄르르 웃었습니까. 당신의 손등은 여전히 가냘프게 하얗고 차갑습니까. 한설이 잔뜩 내린 다음, 날이 조금 풀린 밤에 침착해진 동네를 산책했습니까.
평균 기온이 영하가 되는 계절이면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무렵 우린 어느 대학가의 단출한 원룸에서 얼마간 지냈었죠. 된장찌개를 끓이는 방법을 가지고 유난스레 투닥거리고, 다진 마늘의 투입량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죠. 난데없이 선물한 꽃다발을 당신이 소중한 낯으로 바라보던 장면도, 방 안에 거꾸로 걸어두고는 며칠 몸살 기운을 앓았던 일도 기억합니다. 꽃가루가 그토록 위험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을 밖으로 내놓고 둘이 한참 웃었는데.
나는 요즘도 당신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작가의 책을 자주 읽습니다. 그때마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을 이해합니다. 같은 부분을 읽고 또 읽고 또... 당신은 마음에 들어온 글을 어디든 적어서 꽁꽁 보관하는 일도 좋아했죠. 주로 작업하는 책상 앞에는 그 시절에 당신이 필사해준 시가 단단히 붙어 있습니다.
어쩌다
내 이름을 불러준
그 목소리를
나는 문득 사랑하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은. 어느 대학가, 된장찌개, 다진 마늘과 꽃다발처럼. 책상 앞에 앉을 때도. 특히, 그 계절이 겨울이면. 당신의 얼굴이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은 겁니다. 하얀 바탕 위에 쉽사리 글을 적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지금도 당신의 눈동자는 값비싼 먹을 갈아 큰 붓으로 톡 찍은 것처럼 검고 맑습니까. 당신이 웃는 소리는 새소리 마냥 또랑또랑합니까. 당신은 지금도 마음을 가득 담아 직접 적은 글을 건네주는 일을 좋아합니까.
* <짝사랑> - 이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