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유통기한이

by 금교준

침대에 누워 챠콜 색상의 두꺼운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끌어올린다. 눈꺼풀이 가볍다. 이번엔 머릿속에 넓은 초록과 하얀 양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 마리, 두 마리... 때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소문이 영양가 있을 때도 있다, 고 여기면서. 그러나 눈동자 위쪽에 솟아있는 껍질은 여전히 무거워질 생각을 안 했다. 충전기가 꽂힌 핸드폰을 대충 들고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접속한다. 시청 중인 콘텐츠에는 보다만 영화와 드라마가 줄지어 자신을 선택해주기만을 기다렸다. 지옥, 아비정전, 마이네임, 에반게리온... 제철이거나 철이 훌쩍 지났거나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나란한 채로.


어릴 적부터 그랬다. 시끄러울 정도로 주변에서 유행하던 것들에 대해 큰 흥미가 없었다. 누군가 꼭 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 일 분쯤 틀었다가 껐다. 시청 목록에 넣어두면 언젠가 관심이 생길 것 같아서. 내게 중요한 건 느낌이었다. 느낌상 재밌을 거 같아, 느낌상 보고 싶어, 느낌상, 느낌상... 한 번 눈길이 가지 않으면 시선이 닿을 때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딱 한 번, 스치듯 마주친 그녀가 자꾸 궁금해진다는 사실은 각별해질 거라는 복선이었다. 바 형태의 테이블이 놓인 카페에서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으며 웃던 모습에서 모종의 느낌이,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


넷플릭스를 끄고 유튜브를 켠다. 최근 시청한 목록에는 중경삼림 포스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가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지 않느냐, 고 했던 일을 기억한다. 각별한 사이가 된 후였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서 변할 거면 그건 사랑이 아닌 거라고. 그렇게 먹을 수 없는 통조림이 될 거였으면 애초에 왜 시작했냐는 식으로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오래 다퉜지. 창밖에선 이름을 알지 못하는 동물이 고요히 울었다. 달도 저 소릴 듣고 순식간에 끌려가 삼켜진 것처럼 조용했다. 우리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기회는 그게 마지막이어야만 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누군가 적었을 그 문장이 머릿속을 줄지어 떠다니고 있었다.



* <꾀병> -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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