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종종 작가가 나를 면밀히 관찰하고 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매몰찬 이별이 발생하고, 사회의 각박함에 묻히고, 결국 아픔에 무뎌지고. 작중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자음과 모음으로 뜯으면서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특유의 감정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것이다. 이건 내 이야기다. 틀림없다. 나를 안아주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적고 싶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써서 내 것으로 갖고 싶어 진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대로 펼쳐두고 따라 쓰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왼팔은 책을, 오른팔은 필사 노트를 누른 채 글자들을 꾹꾹 눌러 담는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꿋꿋해야 한다. 페이지 면면에 포옹이 있다, 고 생각하면서. 그의 문장과 문체를 닮기 위해서. 쓰다 보면 언젠가 그는 내 몸속으로 확 하고 들어와 온도를 높이고, 나는 다시 누군가 안아줄 문장을 적어낼 수 있을 거라고. 단단히 믿는다.
희가 적었던 토씨들이 내 가슴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그녀도 필사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머리부터 시작해 온몸을 휘감는 문장들을 쓸 줄 알았다. 그녀가 불쑥 내민 종이에는 예외 없이 짧은 글귀가 적혀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가져다 방 곳곳에 붙였다. 아침에 한 번, 옷 입을 때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권장 식습관처럼 하루 세 번씩 들여다봤다. 그러고 보니 희는 끼니마다 굶지 말라고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한 번은 늦잠 탓에 아침을 거르려는데 그녀가 계란 프라이를 하나 구워 내밀었다. 이거라도 먹고 가요. 발음하는 데 3초도 채 걸리지 않는 문장 덕분에 며칠을 더 살았단 사실을 그녀는 알까.
귀퉁이가 몇 군데 접힌 책을 펼쳤다. 이 페이지들을 진작 적었다면 그녀를 더 꽉 안아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