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것들을 생각한다. 그것들은 노끈만큼 질긴 면모가 있어서 억지로 힘을 주어도 쉽게 끊어지질 않는다. 오늘은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다는 뉴스가 성했고, 나는 갑자기 싸늘해진 밖을 좀 걸었다. 공기는 한창 건조했다. 네가 말했던 대로 지성피부인 나는 손끝과 광대가 적당히 팽팽해졌다. 잘 챙기고 다니라던 립밤은 챙기질 못했다. 아마 방 어딘가에 거꾸로 세워져 있을 것이다. 하얗고 펑퍼짐한 눈이 무릎 높이로 쌓였던 날, 젖살이 덜 빠진 채로 꾸짖던 네 얼굴을 기억한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던 그날의 공기와 오르막, 내리막이 잔뜩 있던 동네, 천성 탓에 각질이 자주 탈락해서 고역이라며 립밤을 안고 살았던 입술까지.
겨울이 왔다. 이맘때면 발걸음이 뚝 끊긴다던 공원에는 그 시절 이후로 가본 적이 없다. 그곳에 너를 기다리며 양손을 호호 불었던 광장이 있고, 네가 처음 만들어본 거라며 쿠키가 든 상자를 내밀었던 벤치가 있고, 나를 못 본 체하며 걷는 뒷모습을 처연히 바라봤던 정거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종의... 망각 때문일 거다. 머릿속에 남은 네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독일의 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만에 70%를 망각한다. 오늘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이 네 가지를 배웠다면, 내일은 덧셈 하나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분명 생긴다는 거였다. 그 말은 내가 그곳에 가서 우연히라도 너를 본다면, 다음날 내가 기억하는 것이 그 시절의 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너는 그때의 나를 기억할까.
한참 걷고 들어왔을 때 방 내부의 공기가 손끝에 뜨겁게 맺혔다. 안과 밖의 온도차가 성질을 부리는 모양이다. 따뜻해요. 네가 내 손을 맞잡으며 발음했던 문장을, 내 손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