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함께

by 금교준

찬바람이 분다. 나는 오늘 옷깃을 꽉 붙잡거나 팔짱을 껴 스며드는 바람을 막으며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붉은 이파리를 덕지덕지 붙인 채 좌우로 도리질을 치는 나무를 보았다. 깃대에 둘둘 감긴 모습으로 끝만 세차게 흔드는 깃발을, 그 위에 하얀 글씨로 새겨진 소품 가게 이름을, 통유리창에 적힌 이국의 언어를 보았다. Evryday Togethe. 의식하지 않아도 군데군데 빠진 철자들이 자동으로 읽혔다. 언어란 건 그런 식이다.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듣고 말하고 읽으면 머릿속에 자리 잡은 형태가 견고해진다. 그 사실을 완전하지 않은 단어로부터 배웠다.


수현. 입술을 두어 번 깨물고는 그녀와 남이 되던 날을 상기한다. 손가락 틈새가 쩍쩍 찢어질 듯이 건조한 날이었지. 그 탓에 좀 괴로웠다. 사이언스 타임스에서는 피부에 수분이 부족해져서 손이 트는 거라고 했다. 겨울철엔 습도가 워낙 낮아 그런 일이 잦은 거라고. 특히 바람 때문에 더하다는 말도 덧붙었는데, 빨래가 잘 마르려면 낮은 습도와 시원한 바람이 필요하다는 게 생각났다. 아무튼 그날은 겨울이었고, 바람이 유독 세찼다. 나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그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있잖아... 우리... 미안해... 바람 소리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어절과 어절로 끊겨 들렸다. 그녀는 쌀쌀한 어절을 고작 몇 개 남기곤 전화를 끊었다. 우리 약속했잖아. 원망 가득한 말투로 속을 시끄럽게 채웠던 그 말을, 그러나 결코 목구멍을 넘어서지 못했던 그 한 마디를 기억한다.


이후로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두고 간 것을 아련하게 곱씹는 일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먼 사이가 되면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Evryday Togethe. 그녀와 나 사이에서 갈피를 잃어버린 약속이, 그저 애석하다.


가게 내부는 따뜻했고, 커피 향이 났다. 창밖으로 철자가 빠진 문구가 자꾸 보였다. 잊을만하면 눈에 띄는 식이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탓에 가게 내부를 들여다보는 이들과 어색한 눈빛을 몇 차례 주고받기도 했다. 양 볼이 붉게 달아오른 사람들. 재밌는 농담을 주고받은 듯 허리를 젖히면서 웃는 사람들. 그들의 웃음소리. 문이 열릴 때마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 그럴 때마다 가슴이 헉-하고 막히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곳을 일어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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