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갇힌 적이 있다. 하얀 나무 문짝 안으로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며칠을 살았다. 이젠 부를 수 없는 이름을 불렀고, 받을 수 없는 선물을 바닥에 널브러뜨렸다. 편지를 하나하나 펼치고, 너무 오래 접어둔 탓에 펴지지 않는 것들은 지우개와 볼펜으로 고정했다. 그 위에 적힌 익숙한 필체를 천천히 읽었다. 당신을... 했어요... 해요... 묽은 액체 때문인지 불분명하게 남아있던 마지막 문장을 나는 기억한다. 그건 일종의 의식이었고, 진정한 작별 인사였다. 이를테면,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을 때 이 의식을 치르고 나면 그를 금세 잊을 수 있었다. 이만큼이나 해줬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당신을 떠나가게 만든 건 나라고.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드는 문장을 몇 번이고 지어다 삼켰다. 한참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지름이 1~2cm 정도로 아주 작은 열매, 쉽게 눈길이 가지 않는 거. 그런 것을 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손바닥의 반도 안 되는 크기에 과즙이 꽉 차 있는 걸 상상하면... 새빨간 피가 혈관을 타고 쌩쌩 달리는 기분이 된다. 시원하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들이 콧구멍을 활짝 열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 같다. 좀 살만해진다. 그러니까 그 겨울에,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기척을 감추는 진눈깨비가 잔뜩 내리던 날에, 돌감나무를 보고 멈춰 섰던 것은 순리였을 뿐이다. 벌거벗은 가지를 힘겹게 붙들고 있던 열매가, 그 처지가 나와 다를 게 없었다. 작고 과즙으로 꽉 찼고. 특히 자신을 외면한 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혼자가 아니라는 막연한 사실이 나를 숨 쉬게 했다.
우리는 서로가 없어도 잔상들을 웃자라게 했으므로 근처 어디쯤에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 같은 것도 있었다.* 고 누군가는 썼다. 돌이켜 봄 나는 잊었다고 말한 것을 잊지 못했고, 책장 어느 구석에는 이젠 받을 수 없는 무언가가 끼워져 있다. 아마 당신은 이 사실을 알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사는 곳 근처 어디쯤에는... 내가 흘린 다짐 같은 게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