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수현이 떠오른 이유는 허구한 날 펼친 페이지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겹겹의 밑줄이 문장 아랫면을 꿰차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내 뒤를 따라 적층 된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선명한 것은 무엇이고 희미한 것은 무엇인지를. 눈높이보다 높게 쌓인 시간의 파편들을 하나씩 들춘다.
기억의 시작은 대략 5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장실 대용으로 어린이용 간이 변기를 썼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사물을 관찰하는 걸 즐긴다. 그러니까 간이 변기를 빤히 쳐다보고, 앉아보기도 하고, 두 발로 서보기도 하고, 옆으로 눕혀보기도 한 일은 또래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덧붙여 주관이 생기는 것도 이 시기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거리낌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바닥을 뒹구르거나 하는 행동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질 않았다. 누군가 나보다 더 원하는 것 같으면 내 손아귀에 들어왔더라도 곧잘 양보했다. 지금으로 치면 옷이라던가 신발, 과장 좀 해서 자동차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소시지나 고기 산적, 두부 지짐이 같은 것들을, 나름 관대하게 나눴다. (언제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이다.)
탐색 지점을 높여보기로 한다. 가슴 정도의 높이. 이맘때면 아마... 대학 시절일 거였다. 수현이라는 이름과 인상착의, 그녀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의 종류가 적힌 것들이 손에 잔뜩 잡혔다. 현재의 나를 만드는 데엔 그녀가 큰 몫을 했으므로. 이만큼이나 잡힌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빈도에 있다. 다른 시기에는 전공과목이나 직업, 가고 싶었던 여행지나 술집의 이름이 하나 건너 하나꼴로 보이는데. 조금 더, 다시 조금 더 올라갈수록 그녀를 표현하는 것들만 즐비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녀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간 걸까. 그녀를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붙들었던 걸까.
그녀를 잃은 직후에 얼마간 죽어있었던 게 기억난다. 틈만 나면 걸음을 멈추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탓했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온갖 이별 노래들을 궁상맞게 불렀다. 미처 지우지 못한 통화 녹음 파일을 틀어놓고 절전모드가 될 때까지 마우스를 움직이지 못했던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런 파편들은 그녀가 내 삶에서 차지했던 부분의 크기를 실감하게 만든다. 흑갈색 생머리와 짙은 쌍꺼풀, 체리 냄새가 나던 붉은 입술까지. 어쨌든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아무리 오래 그리워하고 생각하고 이름을 불러봐도 그녀가 되돌아오진 않는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 단지 돌아가고 싶었던 날들이 나를 형성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살만해진다. 상처를 견디는 동안 터득한 노하우이기도 하고, 실제로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을 글로 휘갈겨 쓰면서부터 나는 산 사람처럼 일어났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들의 역사는 회고의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뒤이은 문장까지 연달아 읽는다. 때때로 사람은 문장 하나 때문에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 이제니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