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by 금교준

진주하면 떠오르는 게 더러 있다. 일단 진주는 6월의 탄생석이고 내가 태어난 달은 6월이다. 경상남도 진주엔 군 복무 차 얼마간 살았고, 누군가를 보러 간 날도 있다. 그곳엔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남강이 있는데 군장을 메고 한참을 걸었던 게 생각난다. 지금도 물 냄새와 풀 냄새. 옷깃 안쪽에서부터 풍기던 짠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는 한쪽 팔에 진주로 타투를 새겼다. 여러모로 각별하게 여기고 싶었기 때문에. 참, 내가 진주야, 하고 부르고 다녔던 애도 있었다. 진주가 고향이라던 애. 이젠 커서 직장인이 된 그 애는 먼 고장에 산다고 들었다. 지금 내가 진주에 대해 두서없이 떠드는 이유는 그 애 때문이다. 타투를 받으면서 그 애를 부르던 게 기억났고, 그 애 하면 어김없이 진주가 따라왔으므로.


조개는 연체동물이다. 겉을 둘러싼 판판한 것은 몸을 보호해주는 껍데기일 뿐이다. 조개가 이 껍데기 속으로 흘러들어온 이물질을 격리하기 위해 탄산칼슘으로 둘둘 감싸면서 생긴 것이 진주다. 그러니까... 식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고혈압이나 두통, 눈병 등에 효능이 있어 약으로 쓰이기도 한단다. 진주와 관련된 신화도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초대한 연회에서 진주 하나를 식초에 넣어 마셨다는 이야기다.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던데. 과연. 가능할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신기한 일이 많다. 나는 태몽마저도 진주다. 해안가에 커다란 조개가 있었고, 껍데기를 벌리더니 큰 진주가 두 개 붙어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쌍둥이라는 걸 짐작하셨을 거였다) 바다와 파도 소리를 좋아하는 게 내게 있어 순리라는 생각이 별안간 든다.


그러고 보니 그 애와 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바다를 보면 답답한 게 좀 가실 거라는 진부한 클리셰 때문이었다. 안개가 잔뜩 낀 하늘과 펑펑 터져대는 폭죽, 주머니 안과 밖의 온도차에 의해 맺힌 물방울과 축축한 손등, 그리고 화약 탄 내. 뒤이어 우리가 그날 나눴던 이야기를 하나씩 복기한다. 우리는 비슷한 이별을 겪었다. 그래선지 나는 걔를 좀 남다르게 여겼다. 우리 사이엔 뭐랄까. 동질감 같은 게 있었다. 같은 배를 탔다는 느낌. 아마 서로에게 거리낌이 없고 개그 코드가 잘 맞았던 것은 그 덕일 것이다. 한때 즐거웠던 인연. 나에게 그 애를, 그 애에게 나를 정의하는 명제로는 그 말이 딱 적당하다. 곱씹으면 웃음 나는 존재. 어느새 마음을 크게 먹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존재.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는 존재. 어른이 되면서부터 인연의 폭이 자연스레 좁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도하지 않아도 희미해지는 이름이 많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누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기억은 점점 자라 내 몸의 일부로 자리 잡는 것 같다. 목적 없이 흐르는 의식과 그들을 앞지르는 일련의 감각이, 어떤 순간이 되면 이때를 떠올리게 될까. 했던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나는 오늘 진주에 대해서 생각했다.



* <서른>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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