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by 금교준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있습니다. 버스 차창으로는 문 닫은 가게의 간판이 보이고 그 위에 새겨진 글자가 일렁입니다. 옷을 두껍게 겹쳐 입은 사람들이 입김을 뿜으며 가게 앞을 지나가고, 옆쪽에는 당신과 걸었던 골목과 비슷하게 생긴 길이 있습니다. 가로등이 덜렁 서 있고 다소 굴곡졌습니다. 음, 가장자리를 표시해주는 LED 등이 바닥에 두 줄로 늘어서 있네요. 당신과 나는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걷곤 했죠. 주머니 안에서 서로의 손을 더듬고,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를 단단히 끼워 깍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한 이불 덮고 유튜브 보던 일을 기억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 하다 잠들고, 공포 게임 유튜브를 보며 소리 지르고. 과자를 까먹으며 흘린 부스러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불을 들쳐 메고 코인 빨래방에 갔던 것도 선명하네요. 그 근처에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 집이 있었는데. 해물파전도 기가 막혔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웃음 지어지는 일들은 온통 당신과 같이 한 것들입니다. 사실은... 그때 일도 잘 안 풀리고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던 시기였습니다.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뭐만 하면 실수하고 자꾸 깜빡하고 앞이 막막하단 생각에 이게 맞나 싶고. 어떤 날엔 나 자신이 막 밉기도 하더라니까요. 근데 그 와중에도 당신을 보면, 당신이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춥지 않았냐며 내 손을 잡고 너무 차갑다며 호들갑 떨었던 거, 매일 보는데도 퇴근할 때마다 보고 싶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던 거,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 시절, 같이 살았던 빌라의 외형과 손잡고 걸었던 골목의 모양, 자주 들렀던 편의점의 이름과 당신이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생각합니다. 짙은 그리움은 현실을 지우고 사람을 꿈속으로 데려간다.* 는 말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으며 차창에 머리를 묻습니다. 건조한 히터 냄새는 코를 간지럽히고, 나는 창문의 떨림으로 포장도로의 감촉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버스는 종점까지 한참을 달릴 겁니다. 나는 곧 잠들고 당신을 만날 겁니다. 지금은 어느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있습니다.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 오수영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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