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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06. 2022

사랑의 방정식

그해 여름의 일이다. 엉켜있던 것들이 일순간에 모조리 풀릴 것만 같은 해였다. 나는 경포대로 차를 몰았고, 바다에 인접하면서도 인적이 드문 카페를 찾기 위해 낯선 동네를 무한의 띠처럼 돌았다. 시계방향으로 한 번, 반시계 방향으로 한 번. 대각선으로 열어둔 창으로 기분 좋은 냄새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는 그 근거 없는 직감을 사실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나에게 사랑은 무한대 같은 거였다. 생업과 본업, 쓰지 못해 무용해진 손가락, 갈수록 녹슬어가는 희망처럼 나를 틈틈이 갉아먹는 것들을 죽 늘어놓더라도 단번에 덮어 별거 아닌 것으로 포장해버리는 게 사랑이라는 가설을 신봉했다. 더군다나 나는 사랑하기로 마음먹지 않아도 금세 한 사람을 추앙하게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름의 초입이라는 것과 문득 방문한 바다에 그 애가 있었다는 거, 타투의 의미를 묻는 그 애의 목소리가 좋았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걸고 싶어졌다. 바다를 좋아해, 말고 바다를 좋아해? 하고 싶었던 거지. 그 애를 구성하는 것들을 세포 단위로 쪼개 면밀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애의 물음. 나는 그것 때문에 자주 벗겨졌다. 무방비하게 입이 열리면 내 몸을 빠져나간 글자들은 그 애가 꼭 안고 다니던 태블릿에 낱낱이 기록되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글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 그 애의 손가락을 타고 디지털 신호가 되었다가 마침내 태블릿 안으로 들어가 살고 싶었다. 결국 인간으로 남아있지만.     


그땐 몰랐던 사실. 무한대라는 개념이 보편성을 가지게 된 건 삼백 년 전이다. 베르누이 일가에서 제시한 난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베르누이 일가는 17-18세기를 통틀어 유능한 수학자들을 배출했는데 1738년에 다니엘 베르누이가 무한의 개념이 포함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을 학계에 제시한 일과 당대 수학자들이 이를 명확히 풀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으로 무한대는 널리 퍼졌다. 

베르누이 일가는 베르누이 방정식으로 더 유명하다. 그것은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있을 정도로 상식이 되었다. 길쭉한 관에 유체가 흐를 때, 특정 지점에서의 공간이 좁아지면 유체에는 속도가 붙는다. 나는 그 방정식이 그 애와 나 사이에도 적용될 거라고 여겼다. 우리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묻는 말에 꼬박꼬박 답을 달수록 둘을 관통하는 호기심에 속도가 붙기를 바란 거였다. 우리는 서로를 더 알고 싶은 사람으로 느낄 것이고, 그걸 사랑이라고 여길지도 모르니까. 그럼 나를 둘러싼 것들은 온통 그 애가 되어서 나는 엉킨 사람에서 풀린 사람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였다. 그래야만 했다.    

 

더 이상 사랑을 아름다운 것으로 속단하지 않게 되었다. 사랑이라고 전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덕분에 능동적으로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거. 조금은 현실을 직시할 줄 알게 됐다는 거. 그해 여름에 나는 그런 것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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