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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27. 2020

될 놈에서 안 될 놈으로, 이제 다시 될 놈으로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을 극복한 하나뿐인 이야기

될 놈인 줄 알았는데 안될 놈이 됐다.

 

 그렇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엘리트까지는 아니지만, 10%에 드는 소위 ‘인 서울’ 대학교 졸업자다. 내가 공부를 시작하던 고3 초반, 나를 무시하던 친구들은 ‘저 양아치가 언제까지 공부하겠어’라고 비아냥거렸다. 놀 줄 아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생긴 결과를 책임질 때가 온 것이다.(물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 주는 짓은 결코 안 했다. 오히려 다들 친하게 지낼 정도였으니까. 친구들이랑 보리음료 정도만 홀짝댔을 뿐..) 결국 나는 1년간 하루 3시간도 채 자지 않고, 인 서울 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덕분에 대학교를 가서도 리포트를 쓰던, 학생회를 하던, 알아서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배웠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공군 장교로 입대했다. 


 입대 이후 나의 생활은 온통 ‘실패 투성이’였다. 훈련받을 때, 그 육체적 고통들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내 몸뚱이가 좌절스러웠다. 자대 갔을 때, 그동안 겪어온 수십만 가지의 경험들은 알고 보니 몇 가지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보고서를 이따구로 썼냐” “대학 가서 뭐했냐” “못 배운 놈” 등의 말을 듣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말들은 누구보다 성숙한 어른인 줄 알았던 내게 “너는 온실 속의 화초야”라는 결론을 알려줬다.

 맞다. 나는 온실 속의 화초였다. 조금만 노력해도 인정받는 화초. 스스로 예쁜 장미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있던 그냥 잡초. 정말 신기했던 건, 당시에는 그 쉽디 쉬운 ‘복사’하는 것조차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있었다. 기기 사용법은 모르겠고, 아버지 뻘의 부서원분들은 어색하고. 보고서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더군다나, 다른 부서완 다르게 바로 위 선배가 17년 차이나는 분이었기에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외로운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내가 정말 똑똑한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현실을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충격적인 실패는 이것이다. 너무 ‘오만’했다는 것.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러다 ‘자살예방교육’을 듣게 됐는데, 어? 이것 참 이상했다. 


“다른 사람의 자살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정말 위험한 상태인 겁니다.” 

 강사님의 이 말을 듣고는 머리 한쪽이 띵-했다. 내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때 평소 내 하소연을 많이 들어주던 선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선배 말을 들어보니 듣자마자 내 얘기 같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안될 놈에서 다시 될 놈이 되고 있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세요. 본인이라면 잊고 있던 취미를 다시 해보는 것도 좋아요.” 

 그 강사님이 하신 마지막 말이었다. 이 한마디 덕분에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때의 나는 정말 절실했고, 잊고 있던 취미를 찾았으니까. 내 취미는 ‘글쓰기’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시’를 짓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강사님 말대로 글을 다시 쓰니까 감정들이 해소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때 썼던 시들에는 상사에 대한 감정이나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녹아들어 있다. 한 번은 각 부서 실장님들과 회식자리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최고 지휘관님이 나보고 시를 읊어보라고 하셨는데, 그때 읊었던 시가 하필 ‘간섭’이라는 시였다. 제목만 들어도 알 것 같지 않은가? 며칠 전에 썼던 글을 읊으려고 제목을 턱- 읽었는데 그게 상사에 대한 시였던 거다! 실장님께서 ‘여자 친구랑 싸웠구나!’라는 말로 무마하긴 했지만, 정말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두고두고 전설이 됐다는 소문..) 


 어찌 됐건 그 결과로 ‘시집’도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주면서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심지어 부대를 대표하는 긍정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지금은 결코 힘듦에 빠져 살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현실사회는 조금의 가능성을 갖고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그걸로 되겠어?’라는 생각을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바꾼다면 인생 자체가 바뀐다. ‘일단 해보자’가 ‘되네?’가 되기 때문이다. 즉,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그건 우리가 시작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만약 시작만 한다면, 1%의 가능성도 시간이 지나 10%가 되고, 100%가 될 수 있다. 


‘설마 다시 글 쓴다고 좋아지겠어?’
‘글 쓰니까 기분이 좋아지네?’
“우리 부대 긍정의 아이콘은 금교준(본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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