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깨져요
“사람의 팔자는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천공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인생이란 뭘까?”라는 물음. 대학생 때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게 뜬금없이 묻곤 했던 질문이다. 정말 인생이란 뭘까? 혹자는 “삶은 계란이지!”라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삶은 계란이라는 말.. 분위기를 한순간에 차갑게 만들곤 하는 이 말은 종종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 심오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한때, 다이어트한답시고 삶은 계란을 아침 삼아 먹던 때가 있었다. 그나마도 맛있게 먹고 싶다고 반숙으로 삶는 방법을 터득했던 나는, 아직도 탱탱하면서도 촉촉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굵은소금을 훅훅- 뿌리고 센 불을 틀어 8분을 잰다. 유독 길고 긴 8분이 지나면, 믿던 말던 찰나의 순간에 찬물로 다이빙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까면? 껍질은 마치 가을의 셔츠를 벗듯 자연스레 벗겨지고, 탱탱한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어후.. 고 탱탱한 흰자위와 촉촉한 노른자위의 향연이란.. 플라톤의 향연보다도 더 깊은 심오함을 안겨준다. ‘세상에, 계란이 이토록 맛있었나? 이토록 고소하고 담백한 음식이 또 있을까?’
삶도 마찬가지다. 12년을 꼬박 달려 공부를 하고 나니까 정신도 못 차리던 찰나에 대학교 졸업생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머리 위의 학사모와 학사가운은 가볍게 벗겨지고, 나를 괴롭히던 강의자료와 학점의 포화 속에서 탈출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만큼 짜릿하고 담백했던 때가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연약하고 탱탱한 나의 몸뚱이가 지독히도 각박한 현실로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는 사실이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했다. 명실공히 ‘공군 장교’로서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 중에서도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공군, 그것도 장교로서 맞이한 군인으로서의 첫날 밤은 극심한 공포로 시작했다.
“지금부터 여기 있는 후보생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의 바닥을 보여주겠어. 다 엎드려!”
그때부터 시작된 마구잡이 얼차려와 체력단련은 군대란 곳이 어떤 곳인지 똑똑히 기억하게 해 줬다. 반복되는 운동과 비 오듯 흘리는 땀을 느끼다 보면 한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눈 앞에는 별들이 가득하고 점점 채워지더니 앞이 안 보이기 시작한다.
“무서우면 지금 손 들어라. 우린 나약한 사람은 받지 않는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어떡하지?’라는 걱정.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대로 돌아가긴 싫다’라는 생각과, ‘이런 취급받으면서 어떻게 살라는 거야? 나갈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며 학창 시절에 배운 ‘내적 갈등’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체득하게 됐다. 결국 그날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걱정하며 밤을 지새운 날이 됐다.
16주라는 훈련기간이 끝나고 나름 군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나니까 어김없이 어깨에 다이아몬드가 채워졌다. 그때 느끼는 희열이란, 공부의 속박에서 벗어나던 대학교 졸업식 때처럼 짜릿하고 담백했다. 더군다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견뎌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할 거라는 자신감이 충천했었다. ‘이젠 나도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야!’라는 생각에 차 있던 때. 이때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온실 속의 화초’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대에 배치받았을 때, 그동안 공부해왔던 지식들은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더 문제는, 처음으로 직무교육을 받을 때가 돼서야 나는 컴퓨터 언어 쪽은 잼병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는 거다.(자원해서 온 곳이 SW를 다루는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첫 직장상사는 경력부터가 18년 차이나는 분으로, 꽤나 이름이 자자한 분이었다.
“이것도 못해? 내가 너 때문에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
일은 깨지면서 배우는 거라며 3개월 차 신입에게 부서의 업무분석 보고서를 들이밀던 그분이 자주 하던 소리다. 누구는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사람도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한마디가 너무 고맙다. 덕분에 잊고 있던 ‘시 쓰는 취미’를 다시 찾았으니까.
이와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한 번은 상급자분들(대대장급 이상)과 함께 하던 회식자리에서 가장 높은 분이 시를 한 편 읊으라고 한 적이 있다. 군대 특성상 어쩔 수없이 얼마 전에 썼던 시를 읊게 됐는데 문제는.. 그 시가 그분을 생각하며 적은 시였다는 거다. "제목은 ‘간섭’입니다…" (아차!!!!!!!!!!!!) 그날 나는 지금은 전설적으로 남은 ‘대참사’를 경험했고, 동시에 ‘짜릿함’을 경험했다. (그 순간에는 여자 친구와 싸우고 쓴 글이라며 무마하긴 했었다.)
어찌 됐건 그분 덕분에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깨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 어느새 구렁텅이에 빠져버렸으니까. 대신에 내가 가진 계란은 셀 수없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까짓 거 깨질 때까지 치지 뭐!’라는 오기. 선배들이 집에 갈 때, 나는 남아서 바위를 때렸고, 부서원들이 커피 마실 때, 혼자서라도 바위를 때렸다. 그리고 마침내 바위가 깨졌을 때, ‘나는 한층 단단한 계란을 가지게 됐구나!’라는 깨달음을 배웠다.
이 글의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에겐 수많은 계란들이 있다. 그리고 우린 그 계란들을 가지고 단단한 바위들을 부숴야만 한다. 살짝 절망적인 사실은 A라는 바위를 부수면 좀 더 큰 B라는 바위가 나온다는 거다. 그럼에도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들고 있는 계란이 점점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좀 더 강한 계란을 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하나뿐인 쌍둥이 형제보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 덕분에 인생에서 배운 교훈들을 많이 나눠주던 내게 쌍둥이 형제는 고민을 많이 털어놓는다.(사실 쌍둥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주말마다 치킨을 사 갔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ㅋㅋ) 내가 그토록 미운 상사들에게 고마운 부분은, 말하는 걸 좋아하던 내가 들어줄 줄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줬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쌍둥이 형제는 내게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마음의 편안함을 얻어간다고 말해주곤 한다.
내가 힘듦을 견디지 않았다면, 여전히 내 인생만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내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뭐라도 되는 양 꾸짖었을 거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잣대로 평가받아봤기 때문에, 무시당해봤기 때문에 상대에게 집중해 줄 수 있는 여력을 조금은 갖게 된 것일 테다. 고통스러워봤기 때문에 상대의 인생을 존중해줄 수 있는 걸 테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나를 통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실이 무척 감사할 따름이다.
** 최근 일에 치여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쌍둥이에게.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길 바라! 독자분들도 마음으로 ‘네 선택을 존중한다.’라고 응원해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