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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Sep 14. 2021

소시지로 일주일 버티기

분홍소시지냐 vs 후랑크소시지냐 vs 스팸이냐



'그냥' 먹고 싶어서 

#교촌치킨 #닭강정 #맘스터치 



자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 교촌치킨을 시켜놓고 맥주 한 캔과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가족과 함께 살 때도 할 수 있었지만 오로지 혼자 있을 때 자유를 즐겨보고 싶었다. 방해 요소가 전혀 없는 고요함 속에서.



그렇게 소원 성취. 교촌치킨의 간장 윙과 함께 맥주 한 캔을 살짝 얼려 금요일 밤을 보냈다. 따로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를 할 일도 없었다. 그저 분리수거만 잘해서 처리하면 되었기에 편했다.



닭강정, 우울한 날이었나 봄

그 이후로 금요일마다 매번 교촌치킨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울한 날은 우울하다는 핑계로 닭강정 중간 사이즈를 포장해 왔고, 그냥 지나가다가 너무 먹고 싶어서 햄버거 세트를 포장해왔다. 돈을 아낀다는 핑계로 저녁시간쯤 마트를 방문해 세일 상품을 두어 개씩 집어 오기도 했다. 마트에 가지 않으면 0원인 것을. 가계부를 작성하진 않아서 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일주일에 '그냥' 혹은 '감정'에 의해 먹거리 소비를 꽤나 했던 걸로 기억한다.



자취방 냉장고에 먹을 것들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싸준 각종 반찬들, 포장김, 계란 등 얼마든지 먹으려면 건강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써도 될 돈을 그렇게 써버렸다. 집에 있는 반찬들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맨날 먹어봤던 맛이라 손이 가지 않았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평소에 살면서 고급진 입맛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기에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월 200의 월급쟁이에게 10%~20%에 해당하는 돈을 정해진 '기본 식비'가 아닌 '감정 식비'로 소비한다는 것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소시지'로 일주일 버티기 

#추억의 소시지 #긴 소시지 #분홍 소시지



소시지로 일주일 버티기. 아마 90년 대생들이라면 만원의 행복에서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만원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1,000원짜리 긴 소시지를 한 줄 구입한 다음 일주일 내내 소시지만 먹거나 주변 사람들과 음식을 교환해 먹는 것이다. 그래야 그 외로 나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



'만원의 행복'의 프로그램 설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연예인들은 사치스럽다는 편견에 맞서며, 알뜰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소비의 거품을 제거하는 대한민국 자린고비 스타들.



연예인들의 친근함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수 차지하건 아니 건간에 어쨌든 절약을 해보자는 것이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나는 불필요한 식비를 줄여보기 위해 소시지로 일주일 버티기를 하기로 했다.



소시지 1일 차

일주일 소시 지버 티기를 하기로 한 일요일 저녁.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들고 마트로 향했다. 내가 기억하던 1,000원짜리 분홍 소시지는 2,000원이 되어 있었다. 한 줄을 구입하고 집에 돌아와 5등분을 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본가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월~금만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첫날은 괜찮았다. 옛날 생각도 나고 추억 되새김질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따뜻한 밥에 소시지만 올려 먹어도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이제 치킨 안 먹고 소시지만 먹어야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소시지'만'으로 괜찮았던 첫날이었지만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 날이 될수록 소시지에 곁들여 먹을 반찬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소시지 반찬만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식사였고 가공식품이었기에 충만하게 배부른 느낌이 아니었다. 엄마가 싸준 콩자반, 깻잎, 김치 등을 곁들여 먹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먹다 보니 꽤나 괜찮은 밥상이 되었다. 아무튼 매일매일 내 밥상에는 소시지가 올라왔다.



소시지 5일 차

그렇게 금요일이 다가왔고 본가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남은 소시지를 몽땅 구워 처리했다. 평소 같았으면 똑같은 음식을 며칠 내내 먹느라 질려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외면당한 소시지는 아마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테고. 절약의 기본은 집에 있는 음식들로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감정'에 의해 먹는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소시지를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일주일 내내 소시지가 이렇게 맛이 없을 줄은 몰랐다. 




돈도 없는데 건강도 잃으려고?

#냉장고 파먹기 #배달음식 #가공식품



나 같은 자취생들, 월급쟁이들은 식비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대충 컵라면, 스팸 등 가공식품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이마저도 귀찮을 때에는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최소한으로 계산한다 치더라도 한 달에 족히 30만 원은 깨진다. 1년이면 360만 원. '최소한'으로 계산했을 때의 비용이니 의식하지 않는 소비는 그 이상의 지출을 가져다준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먹을 것들에 아끼라고?"



그렇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먹고 싶은 것들을 참아가며 살아가야 하나? 오늘 먹고 소소하게 행복하면 됐지! 내가 그런 행복도 못 즐긴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사 먹는 음식들은 내 몸속에 콜레스테롤을 축적해주는 음식들 뿐이다. 건강한 음식들에 사랑한다며 감정적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나를 죽이는 음식들에 먹고 싶어 죽겠다며 죽자고 달려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킨이나 햄버거 같은 것들을 아예 안 먹고살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루 덜 못살더라도 오늘 하루는 치킨을 먹고야 말겠다는 생각이다. 한 달에 1~2번으로 배달음식 데이를 정해 놓는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도 미리 선정해 놓고, 하루 종일 읽을 책도 미리 선정해 놓는 것이다. 어설프게 맥주값 아끼겠다며 필라이트를 집어 드는 것이 아닌 2,500원짜리 중 가장 먹고 싶은 맥주를 냉장고에 모셔놓는 것이다. 



배달 데이 전까지는 가공식품과 똑같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버섯, 호박, 두부 등으로 내 건강을 지켜야 한다. '넌 돈이 없으니까 건강하기라도 해야 해!'라며 건강함이라도 받았으니. 



아마 내가 있는 집 자식, 소위 금수저였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먹고 싶은 것이야 뭐 제때 사 먹으면 되고. 아마 꽤나 건강하고 고급진 음식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으니 돈 모을 걱정 또한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돈이 없고, 돈을 모아야 한다. 부수입을 만들기 전까지는 그만큼 아껴야 한다. 소소한 부수입인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 팔기, 당근 마켓에 중고물품 팔기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는 없으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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