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반곱슬이다. 심지어 흰머리도 가끔 난다. 아니 꽤나 주기적으로 정수리에 흰 눈이 내린다. 머리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남들은 결 좋은 생머리에 머리색도 자연갈색 혹은 흑색의 고운 빛깔을 가지고 있는데 내 머리는 어쩐지 돈 들어갈 궁리만 하고 있다. 3개월마다 염색을 해줘야 하고(멋 내기 염색이 아닌 새치염색), 4개월마다 파마든 매직이든 해줘야 그나마 일반 머리카락의 발끝만치 쫓아간다. 머리를 길러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머리를 기르면 기를수록 머리 끝부분의 숱이 티가나 게 빠진다. 누가 봐도 '샤기컷'을 한듯한 스타일로 변해버린다. 무려 15년 전에 유행했던 머리스타일로 되어버리니 자칫 과거에 젖어사는 젊은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찰랑찰랑 기를 수 없는 머리이다. 커트만 하면 이발하러 가는 느낌으로 부담이 적었겠다마는 분기마다 내 머리는 기어코 물적 부담을 주었다. 미용실에 방문하면 같은 염색이라도 같은 볼륨매직 혹은 파마더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분명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데도 가장 하위의 서비스를 받으면 머리가 상할 수도 있다며 중간 또는 상위의 서비스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머리에 수개월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로 미용실에 가더라도 항상 똑같은 말의 반복이다.
"어머~ 고객님 저번에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너무 많이 상했어요~ 영양도 넣고 좋은 약 쓰셔야 해요."
단 한 번도 하위의 서비스를 추천받은 적은 없다. 추천을 받는 금액대는 항상 8만 원~15만 원선. 그 이하의 서비스를 받자니 머리가 상할 것 같고 그 이상의 서비스를 받자니 내 속이 상할 것 같았다. 항상 중간급의 서비스를 추천받고 선택했다. 결국 그렇게 염색은 8만 원, 파마는 10만 원 초반대의 금액. 3개월 혹은 4개월마다 20만 원의 돈을 머리에다가 들이부었다. 머리는 또 왜 이렇게 금방 자라는지 한 달 반~두 달을 못 참고 커트하러 가야만 했다.
그렇게 일 년에 100만 원가량의 미용비를 소비하고 있었다.
돈 막을 궁리를 시작한 머리카락
본격적으로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둔 시기는 20살 대학 입학 무렵이다. 내가 원하는 미용실을 선택하고 서비스를 받았지만 단 한 번도 100% 만족감을 주지 못한 헤어스타일. 상상하던 염색은 수지 머리색이었고 상상하던 단발은 아이유 단발이었는데 늘 결과물은 그렇지 못했다.
단발병 유발 성공인데?
머리도 얼굴빨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뒤늦게나마 현실 자각을 한 덕분인지 20대 후반인 지금 더 이상 꾸밈에 흥미가 가지 않는다. 분기마다 20만 원가량의 돈을 들이부어 봤자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조차 없다. 불확실한 데다가 승부를 거느니 미용비 절감으로 확실한 승부처를 두는 것이 나을 듯했다.
예쁜 머리를 하고 나면(그럼에도 100% 만족은 아닌) 예쁜 옷을 사고 싶을 테고 그에 맞는 신발, 가방도 사고 싶겠지. 설령 그렇게 풀착장을 한다 한들 누굴 홀릴 마음도 없었고 꾸미는데 드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니까. 단기적인 만족감으로 인한 소비의 풍선효과를 억제하기로 했다. 절약 입문 단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큰 소비를 막아야만 했다.
커트, 염색, 파마 3가지 중 2가지는 내 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셀프 염색은 워낙 많이들 하니까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만원대의 제품을 사면 그만이었다. 무려 1/8을 절약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염색약을 도포한 후 50분가량을 기다려야 했는데 집중을 요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하기에 최적의 시간이었다. 미용실에서라면 그 시간 동안 핸드폰을 한다거나 존다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집에서 머리에 랩을 씌워놓은 채로 가만히 있자니 영 몸이 근질근질했다. 시간 내서 하기는 아까운,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잡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손톱 발톱 깎기, 설거지, 빨래 널기, 쓰레기 버리기, 청소하기.. 돈을 절약함은 물론이고 시간도 절약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것은 멀티플레이가 쥐약인 나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젠 셀프 컷에 도전. 미용가위를 3,000원이면 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퇴근 후 마트에 들렀다. 아무리 둘러봐도 미용가위는 없었다. 다이소도 없는 시골에 살고 있기에 당장 미용가위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3,000원 마저 절약하라는 뜻이겠거니. 자취방에 있는 부엌 가위와 면도칼로 해결하기로 했다.
부엌 가위를 들고 거울을 봤다. 뭐 엄청난 기술을 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스포츠 컷, 샤기컷, 태슬 컷 등 스타일 컷을 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깔끔한 단발이면 만족스러웠다. 수지와 아이유를 떠나보낸 후로는 꾸밈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부엌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옆머리에 맞춰 느낌 가는 대로 자르고 면도칼로 정리해주면 끝이었다. 감당하지 못한 뒷머리는 주말에 엄마한테 부탁하면 그만이었다.
30%의 미용비 절감
셀프로 염색과 컷은 해결했으니 1년에 30만 원 정도의 미용비를 절감했다. 무려 한 달치 월세.
- 신분이 공무원인지라 알바 못함
- 부수입 만들기 쉽지 않음
- 수지, 아이유도 없음
- 잘 보일 사람 없음
- 돈도 없음
- 좋은 머릿결도 없음
- 머리를 해도 별로
가지고 있는 것이 워낙 없어서 어중간하게 예쁜 머리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시 셀프 컷을 해도, 셀프 염색을 해도 아무 이상 없었다. 어쩌면 이상이 있었던 것은 머리는 꼭 미용실에 가서 해야 한다는 강박감, 꾸밈에 대한 욕구, 불만족의 쳇바퀴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