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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Oct 29. 2023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나 얻은 것 1가지

'좋아한다'는 말이 힘을 잃지 않으려면


# 갈 길 잃은 손가락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면,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돌아가지 않는 뇌를 탓하며 꾸역꾸역 앉아있기보다는,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오후 3시 전후.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아득했던 정신이 조금 선명해진다. 특히 이 시간대에는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귀가 중인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

학원 가방을 메고 정신없이 걷는 초등학생

교복을 입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중학생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그들의 시선은 대부분 아래쪽을 향해있다. 가만히 서있든, 바삐 걸어가든 어쩐지 그 모양새는 모두 비슷한 것만 같다. 한쪽 손에는 핸드폰, 그 화면 속에 고정된 시선.


이런 풍경은 특히 지하철에서 많이 목격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푹 빠져든 그 화면은 늘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유튜브와 인스타 추천피드, 숏츠, 릴스. 이럴 때면 엄지손가락은 아래서 위로 넘기는데만 특화된 것 같다. 하나의 게시물을 다 읽기도 전에 또 다른 게시물, 또 다른 게시물. 심지어 커플들조차도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시선은 각자의 핸드폰을 향해있다. 마치 서로의 눈빛은 지겹다는 듯.


그래서 나는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을 보면 내 마음을 자주 빼앗겼다.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진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연습장에 무언가를 그리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까지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책은 왜 읽는 걸까? 무엇을 그리는 걸까? 어떤 노래를 듣길래 몸이 들썩일까? 걷든, 서있든, 앉아있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손바닥만 한 아주 작은 세계에 집중한다. 그 작은 세계는 자꾸만 우리의 무언가를 갉아먹으며 점점 그들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만 같았다.



# 자주 실패하는 것


우리는 자주 실패한다. 무언가가 좋음에 대하여 말하는 일들을.


'좋다', '좋아요', '좋아한다' 이 단어를 자주 남발해서 어쩔 때는 이 마음이 진정성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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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 것에 마음이 가는 일을 손바닥만 한 세계에서 빈번하게 결정한다. 이를테면, 좋아요를 표시해 두었다가 가방이나 옷을 구매하기도 하고, 애인에게 태그를 걸어 이번 주말에는 이곳에 가자고 제안하기도 하며, 친구에게 공유를 하며 이런 게 진짜 행복이 아니냐며 행복을 논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다양한 질문에 비슷하게 대답하기도 한다.


오 그 가방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갖고 다니던데, 어때?

- 이 가방 좋아. 사람들이 많이 쓰는 데는 이유가 있지.

너 이번에 핫플 갔다 왔더라, 거기 어때?

- 좋아. 사람들 엄청 많더라.

너도 이 영상 봤지?

- 응, 진짜 좋더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에 가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를 보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인정한 음식을 먹는다. 좋아요 개수가 많은, 조회수가 높은, 모두가 인정한.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실패를 피하려는 시도. 이러한 빈번한 시도 끝에, 우리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걸 말하는데 완전하게 실패하고 만다. 너무 많은 것들을 좋다고 해서인지, 네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을 때면 이따 금식 당혹감을 느끼고는 한다. 당혹감을 지우려 '뭘 좋아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 반문하다가도,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좋음을 남발한 탓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 아예 좋은지 아닌지 분간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주 남용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자주 곤혹스러워했고, 때로는 무언가를 좋아하냐는 물음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답변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나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남용하지 않으려면, 보고 듣는 것들을 적재적소에 쓰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타인과 함께할 때면 다수가 좋아하는 걸 보고, 먹고, 본다. 그래야 서로에게 덜 실패로 돌아가니까. 그렇기에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는 혼자여야만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베스트셀러, 인플루언서, 평점, 조회수를 모두 없앤 것이었다. 다수의 마음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오로지 그 대상에 대한 설명만 보고 결정하기.


독서

책을 읽을 때면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것들을 읽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만 같았다.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가 썼으니까, 수억 원의 자산가가 썼으니까, 요즘 시대에는 이 책을 읽어야 하니까. 좋았던 책들도 분명 있었지만, 읽을 때 자꾸만 몇 장이 남았는지 쳐다보게 되는 책들이 있었다. 반면, 오로지 책 소개글만 읽고 내 마음에 들어 집어 들었던 책들은 자주 시계를 쳐다보게 됐다. 엇 일해야 하는데 한 장만, 두 장만, 세 장만 더 읽고! 빠르게 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책들.


여행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나를 보고 자주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왜 젊은 나이에 여행을 가지 않느냐, 차 하나 사서 틈틈이 여행 다녀라, 여행 다녀오면 느끼는 것들이 다르다 등등.. 하지만 아무리 친구들이 여행을 다녀와 찍은 사진을 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니 여행을 가려고 이것저것 준비할 생각을 하니 벌써 아득해졌다. 가고 싶은 곳이 딱히 없었다. 여행지에 대한 설명을 봐도, 사진을 봐도. 하지만 최근에 읽었던 달과 6펜스에 나온 곳에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킬 수 있는 것들


마음이 동하냐, 동하지 않느냐.


다수가 좋아하는 것들을 피하고,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지킨 것에 대한 수확이라면 외로운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 시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같이 동행한다는 것, 하루가 꼭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이 가는 것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삶을 규칙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래야 성공한다"라는 말에 숨겨진 의미는 사실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쓰면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주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핫플 가야지! 여기 맛있대! 여기 좋대! 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이번주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겠다.라고 바뀌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으니까.


차곡차곡 쌓이지 않으면 새치기당할 수도 있다. 쭉 늘어선 마음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 세 번째로 좋아하는 것. 이 마음들은 내 행동의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막 탑승하려는 첫 번째 마음이, 다수의 마음에 의해서 새치기당한다. 결국 첫 번째 마음은 순서를 박탈당하고 다수의 마음이 탑승한다. 다수의 마음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곳에 내린다. 어라? 내가 이곳을 오려고 했던 게 아닌데..


손바닥만 한 작은 세계에 예속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내가 속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고, 덜 외롭고, 덜 무의미하니까.

https://youtu.be/C2CNJ4dgOak?si=105Z0rdx9oRbaU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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