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두부를 만들면서 반성하게 된 하루
자취를 하다 보면 밥을 대충 먹게 된다. 반찬거리를 사 와도 얼마 먹지 못하고 대부분 버리게 된다. 근무를 하게 되면 회사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되고 약속이 있는 날에는 밖에서 사 먹게 되니까 햇반 하나도 반씩 먹다 보면 2일 이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딱히 차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스팸과 계란이 가장 만만하기도 하고 요리를 했을 때 가장 실패가 없는 품목이기도 하니 대부분을 위의 식단으로 먹게 된다. 저렇게라도 먹으면 다행이다. 귀찮을 때는 시리얼, 라면, 아이스크림 등으로 때우게 된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
밥을 부실하게 먹다 보니 먹어도 배만 부를 뿐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요리는 나와는 거리가 먼일이라 생각하여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쉬운 음식부터 차근차근 몸에 건강한 음식으로 채우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부침두부를 먹고 싶었다.
“밭에는 나는 쇠고기”인 콩으로 만든 음식. 단백질이 풍부하고 우리 몸에 유익하지 않은 포화지방산 대신에 식물성 지방이 들어 있다. 예부터 채식을 하는 승려나 인도의 채식주의자들이 영양적으로 가장 의존하는 식품이 콩이었다.
두부가 저렇게 좋다니까, 또 부침두부는 만만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호기롭게 두부를 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 분명 찌개 두부가 아닌 부침두부를 사 왔는데 두부를 썰때부터 불안하더니 계란에 담그니까 와르르 무너졌다. 두부가 상했나? 오늘까지인 세일 상품을 사서 두부가 이모양인가? 두부가 으깨지는 이유를 찾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두부를 담그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으깨진 두부는 수습이 되지 않았고 잘 부쳐지지도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굽다가 시간이 지나도 잘 구워지지 않길래..
두부 한모를 몽땅 넣었더니 결국에는 두부 죽이 되었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분명 그래도 두부와 계란이 함께하니 맛있을 거라는 기대를 걸었다.
나름 두부에 김치를 싸 먹고 싶었기에 김치도 구워냈다. 한 입 까지는 괜찮았으나 두입, 세입 그 이상이 되니 느끼해서 도저히 먹지 못하겠더라. 결국에는 김치만 먹고 두부는 그렇게 고이 묻어드렸다.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나는, 과자는 줄이겠다던 나는 두부 죽의 느끼함을 견디지 못하고 매운맛 치토스를 찾게 되었다. 결국에는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검색창에 두부부침을 하는 법을 쳐보지도 않고 내 멋대로 두부부침을 만드려 하였다. 일정 수준의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두부부침도 못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살면서 요리랑은 거리가 멀었던 나는 최소한 한 번이라도 두부부침을 하는 법을 검색해야 했다.
검색을 해서 알고 보니 두부는 부치기 전에 물기를 쫙 빼줘야 두부를 부치면서 으깨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바삭하고 맛있게 만들려면 부침가루도 필요했다. 이렇게 자세히 나와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검색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나를 믿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실패를 하니 처음의 마음가짐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과자를 찾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 삶을 살을 살아가는데도 비슷하다.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으면 그것을 이뤄냈던 사람들의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물론 그 사람과 똑같은 길을 가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찾지 않고 내식대로 하다가 망해버리면 다시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흔히들 자기 계발서에서 '자기 자신을 믿어라.' '자기 확신을 가져라.'라고 하지만 정도가 지나친 자기 믿음은 해가 된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바뀌려는 의지가 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굳게 박힌 나의 생각을 말랑하게 만들 필요도 있다.
부침두부 하나 만들면서 너무 심각해진 것 같지만..
다음번 부침두부는 꼭 성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