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중앙경찰학교를 9월 4일 자로 졸업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중앙경찰학교에서 직접 졸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실습생 신분을 벗어난 것이다.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더 무거워진다. 4개월간 중앙경찰학교 생활을 하고, 4개월간 파출소 실습을 끝냈다. 흔히들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하기 전에 막연한 기대감에 부푼다. 썸, 연애, 동기와의 추억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중앙경찰학교 생활들을 보면서 나도 꼭 제복을 입고 제2의 캠퍼스 생활을 즐기겠다!라고 생각하는 예비 경찰관님들이 계실 것이다.
물론 썸도 있고 연애도 있고 동기와의 추억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파출소 실습까지 끝내고 보니 중앙경찰학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현장에 나가서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시스템이 짜여있다. 운전을 배우고, 사격을 배우고, 킥스(수사시스템)를 배우고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중앙경찰학교에서는 21시부터 청소시간이다. 취침 전에 마지막 공식 일정이라고 보면 된다. 청소구역은 건물 내 모든 곳을 구석구석 청소하는 것이다. 청소 구역은 각 생활실 별로 부여받는다. 상대적으로 쉬운 복도나 계단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귀찮고 하기 싫은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장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화장실 청소를 매번 걸리는 동기들이 있다. 청소 구역을 바꿔달라고 항의한다. 저번에도 2번째였는데 또 바꿔주세요! 청소구역을 분배하는 시스템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다. 걸렸던 곳이 또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 달라고, 이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따질 수 있을까? 조직생활이기 때문에 내가 편할 때는 남이 불편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불편할 때에는 남이 조금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하기 싫은 곳을 또 한다고 해서 바꿔달라고 항의하는 것은..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면 좋지 않을까.
파출소에서 야간근무가 끝날 무렵.. 아침 6시 정도면 청소를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바쁘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청소를 하는 듯싶다. 이때는 단순히 쓸기뿐만 아니라 세차, 화장실 청소까지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화장실 청소를 해본 적이 없다. 자취를 해보지 않는 이상 화장실 청소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앙경찰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면 감사히 하도록 하자. 이때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빠르게 하는 과정을 익혀둔다면 파출소에서 청소할 때에도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하면 빨래할 일이 많아진다. 특히나 외박이 제한되었기에 생활복, 근무복 등을 수시로 빨게 된다. 여름에는 땀 때문에 자주 빨아야 하고 겨울에는 안에 내의를 입기 때문에 그것들도 자주 빨아야 한다. 세탁기 한 대에 4곳의 생활실이 쓰기 때문에 보통 같은 생활 실내 동기들과 같이 돌린다.
같은 생활실 동기들끼리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다른 생활실이다. 구두로 무슨 요일, 몇 시에는 우리 생활실이 돌릴게요.라고 구두약속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같은 학급이 아니고 그런 구두약속이 되어있지 않다면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세탁물을 돌리러 갔을 때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면 그 위에 우리의 세탁물들을 올려놓고 오는 것이다. ‘다음 순서는 저희입니다’하는 암묵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무시하고 빨래가 다 끝난 줄 알았다며(분명 건조되어있는데..) 자기네 생활실의 세탁물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봤다. 단 2~3분 차이였던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부족하다면 약속을 하여 합의점을 찾던지, 급하다면 묻고 하던지 서로의 예의를 차려야 한다.
서로 다른 생활실을 쓴다고 해서 다시는 안 볼 동기들이 아니다. 파출소 근무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돌고 돌기 때문에 다시는 안 볼사람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세탁기 하나 가지고 너무 진지해진 것 같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도 앞으로의 근무생활들이 스며들어있다.
중앙경찰학교에서의 집합시간, 청소시간, 팀빌딩 시간, 교수님과의 대화시간 등등 이런 것들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전실력, 체력만 잘 기르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간 약속, 대화방법, 갈등 해결방법 등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무엇이든 배울 것이 있고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즐거운 중앙경찰학교 생활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