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90년대생이 맞닥뜨리는 현실
우리가 보낸 방학을 기억하는가? 방학이 시작될 쯤이면 알바몬, 알바천국에서 알바를 찾는다. 시간과 시급을 잘 고려하여 찾는다. 남들이 다 준비하는 토익 점수를 나도 똑같이 따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게 필요하지? 어떤 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지? 이러한 뚜렷한 목표도 없다. 게다가 2년이면 만료되는 토익점수를 입학 후 1, 2학년 때부터 공부한다. 단지 지금 한 번 해놓으면 나중에 점수를 딸 때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토익학원의 수업은 2시간 정도, 스터디 2시간 정도, 이후에 숙제를 하게 되면 3시간 정도가 흘러간다. 최소 7시간을 몽땅 학원에서 보내는 것이다. 그 이후에 혹은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학원에 다니기 위하 기본적은 비용을 마련한다. 이렇게 두 달을 보내고 나면 방학은 끝이다.
토익공부,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후 다시 학교에 돌아온다. 학교에 다니는 생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수강 신청할 때에는 나의 성장을 위한 과목을 수강하기보다는 최소 노력 대비 최대 학점인 과목을 찾는다. 과제도 별로 없고 수업도 무난하다. 이렇게 해서 나온 4.0 이상의 학점은 만족스럽다.
대학 졸업쯔음이 되면 그간 모아두었던 돈들로 워킹홀리데이를 갈지 해외여행을 갈지 결정한다. 회사생활을 하면 이제 마음 놓고 즐길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게 무엇인가. 시간과 돈을 1:1로 교환하여 얻은 돈으로 자격증을 따고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해서 우리는 과연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할 수 있었을까? 남들이 하는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딱 기본만 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배운 것은 똑같았다. 착실하게 아르바이트해서 자격증 따고 어학연수 갔다 와서 좋은 기업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원하는 곳에 우리를 맞춰가라고만 배웠던 것이었다.
물론 가르쳐준 사람들도 있었을 수 있고, 배웠던 사람들도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교수님들이 하는 말씀이고 먼저 취업했던 선배들이 하는 얘기니까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줄 알았던 것이었다.
취업 후 오는 고비가 있다고 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평생직장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취업 후 3년쯤에 현타가 온다. 이 직장이 정말 나와 잘 맞는 것인가? 그렇게 혼돈의 시기를 보낸다. 다른 직장도 찾아보고 자격증도 따 본다. 하지만 이직이 만만치 않다. 그렇게 고비를 넘긴다.
또 얼마 안 지나 고비가 찾아온다. 이번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책임감이 있는 위치에 있다 보니 업무 스트레스가 배로 다가온다. 몇 명의 직원을 통솔해야 하기도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또한 중간에서 상사와 후배의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잘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결혼과 맞물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균형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온다. 근데 이 또한 지나간다.
10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띄게 된다. 이때의 직장생활은? 이미 회사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그렇게 우리는 50,60까지의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인생 선배님들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며 다양한 도전들을 장려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수학, 영어, 국어만 가르쳤고 그렇게 공부해서 간 대학에서는 또 각 전공에 맞는 이론적인 것들만 가르쳐 주었다.
그동안 가르침을 받아온 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열어줄 과목들은 없었던 것이었다. 진로적성검사(?)와 같은 것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시행될 뿐이었고 대학에 와서는 그런 것들을 우리 스스로 찾아서 했야 했던 것이었다. 차라리 돈을 모으는 방법이라도 알려줬으면 돈에 얽매여서 일자리를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안정적인 직장에 있지만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작년 9월부터 그 답을 찾으려고 책을 집어 들었고 책상에서 생각만 해왔다. 편안함을 주는 생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제는 시행착오를 겪어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