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경찰인데 엄마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정확히는 보이스피싱이 아니고 스미싱

by 민이음

엄마, 나 휴대폰 액정 깨졌어


출처 : 중앙일보

연속으로 2일 내내 일이 많아 피곤했던 어느 날.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연락하는 것조차 잊은 채 지쳐 쓰러져 잠든 날이었다. 책상 스탠드를 켜고 잠이 들 정도로, 유튜브 노래를 켜고 잠이 들 정도로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버린 날이었다.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마음이 편한 금요일. 이 날 역시나 피곤했지만 금요일이 주는 효과인지 퇴근 후 운동까지 할 힘이 남아있어 근처 공원을 뛰고 들어오면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아직 귀가 전이였고 아빠와 동생이 집에 있었다. 동생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누나, 휴대폰 액정 다 고쳤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멀쩡한 휴대폰의 액정을 고치다니?



"??? 나 휴대폰 멀쩡한데? 무슨 소리야?"



엄마가 아빠한테 내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연락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단다. 연락이 안 된다고. 전화하지 말라고 했단다. 이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당장 전화를 끊고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휴대폰은 이미 꺼져있는 상태. 한 번도 휴대폰을 꺼진 상태로 들고 다녔던 적이 없는 엄마의 휴대폰이 꺼져있었다.



아빠는 아까부터 엄마 휴대폰의 배터리가 부족하다고 했으니 엄마가 도착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여전히 확인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안감, 찜찜함이 있었지만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 씻고 엄마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뉴스 기사에서 많이 보던 "엄마, 바빠?"라는 카톡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또 엄마는 그때 한가했고, 말투도 완전 나였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임시 카톡이었고 액정이 깨져서 전화는 불가능하니 하지 말라고 했단다. 게다가 돈이 없어 급하니 액정을 고치기 위한 돈을 요구했던 것이었다. 액정 수리를 위한 일정 금액의 입금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링크를 보내주며 클릭하라고 했고 그냥 하라는 대로만 해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 링크를 클릭한 엄마의 휴대폰은 순식간에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다. 휴대폰을 잘 모르는 엄마는 무언가 빠르게 결제가 이루어졌다고 했고 주민등록번호, 카드 비밀번호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내가 엄마의 주민번호, 카드 비밀번호를 알고 있음을 엄마도 알았지만 범죄자는 교묘하게도 잘 빠져나갔다. "아니, 주민번호 뒷번호가 필요해!" , "아니 그 카드 말고 00 카드 비밀번호!" 라며 아주 친절하게 모든 정보를 빼내갔다. 심지어는 아빠에게도 본인의 카톡을 등록하라고 하면서 무언가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아빠는 운전 중이라 그 범죄자와의 카톡을 길게 하지 못해 다행히도 2차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총 피해금액을 따져보니 100만 원. 다행히도 다른 카드사의 비밀번호는 피해를 당한 카드사의 비밀번호와는 달랐고 휴대폰 내에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걸 누가 속아 넘어가냐고?



엄마는 왜 속았을까? 보통 뉴스 기사를 보면 누가 저런 거를 속아 넘어가겠냐!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자식이 급하다는데,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데 안 속아 넘어갈 부모는 없다. 옛날처럼 "당신의 자식이 납치되었소!"류의 속임수를 뛰어넘은 것이다. 아주 지능적으로 의심의 싹을 틔우기 전까지만 속아 넘어갈만한 상황을 만들어 접근하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접수되는 사건들을 보면 피해금액 10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뉴스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몇 백만 원은 물론이고 몇 천만 원까지 피해금액의 스펙트럼은 넓다. 딸인 양, 아들인 양 가장하기도 하고 당장 대출이 급한 자의 심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대상자가 20대라면 취준생의 심리를 이용하고, 30~40대라면 대출이 급할 수도 있는 상황을 이용하고, 50대라면 자식 가진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범죄자 집단들은 대상자들의 나이 때 별로 시나리오를 20개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시나리오중 하나 먹히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면 하는 식인 것이다. 누군가는 몇 년을 땀 흘려 일한 몇 백, 몇 천을 누군가는 앉아서 10분 만에 빼내간다.




속지 않으려면?



속지 말라고 그렇게 홍보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심리에 갇혀있다면 속을 수밖에 없다. 임시 카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행동을 멈추고 자식들에게 전화해보라는 가이드 같은 것들도 그 상황에 닥쳐본 자가 아니라면 허울 좋은 말들 뿐이다. 그래도 제발 주민등록번호나 카드 비밀번호 같은 것들은 알려주지 말자. 정말 급하면 전화를 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피해를 당할 수 있다. 보통 피해자들이 더 자책한다. 왜 내가 멍청하게 이런 범죄에 넘어갔을까, 조금 더 조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며. 범죄를 저지른 놈들은 따로 있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본인을 자책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피해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 방안 같은 것들은 인터넷에 널려있다.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고,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까운 경찰서나 은행에 방문에 상담을 받아보자.



그래도 방문하기 전에 꼭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모든 계좌, 카드를 우선 정지시켜 놓을 것.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분만 더? 여긴 안 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