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손바닥에 글을 적고 다니던 이유

by 별빛

2010년 5월.

큰아이가 여섯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내 손바닥에 적힌 까만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엄마, 왜 손에다 적어?”



나는 무릎을 굽혀 아이의 눈높이로 몸을 낮추고 말했다.

“현이한테 말할 때,

엄마가 조금 더 좋은 방법으로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적어 두고 자꾸 보면서 공부하는 거야.”



아이는 잠시 내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씻으면 지워질 텐데?”

“괜찮아. 또 적으면 되지.”

그날 아이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동공이 커지는 듯하더니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이내 입꼬리가 양쪽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말없이 웃음을 머금은 채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아이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가슴으로 느끼는 듯한 얼굴이었다.

말없이 몇 초를 그렇게 바라보다가

우리는 표정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내적 불행과 감정의 배설 대신,

새끼발톱만큼이라도 배려 깊은 사랑을 주고 싶었다.

나의 실천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육아서에서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아이에게 건네고 싶은 대화법을

손목이나 손바닥에 적어 다녔다.



책은 덮는 순간 잊히기 쉬웠고,

포스트잇은 금세 찢어지거나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어린 두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던 시절,

손에 적어두면 잃어버릴 걱정 없이

언제든 꺼내 보듯 바라볼 수 있었다.



휘갈겨 쓴 글씨라도

나만은 알아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실천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집에서는 실천할 부분이 담긴 책을

아예 하루 종일 펼쳐 두었다.

부모 역할 훈련이나 비폭력 대화 책들은

지금도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쫙 펴진 채로 잘 닫히지 않는다.

적용하기 위해 수없이 펼쳐 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며

‘실천수첩’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언제 어디서든 꺼내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수첩.

예쁘기만 하고 크거나 불편한 수첩은

결국 가방 속에서 잠들기 마련이다.

실천이 아직 습관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금만 번거로워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작고 단순한 수첩을 선택했다.

중요한 건 수첩의 모양이 아니라

그 안에 적힌 문장을

오늘의 나로 옮기는 일이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잘 놀 때면

곁에서 수첩 속 문장을 되뇌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신호 대기 중에 한 문장을 읽고

‘이걸 오늘 어떻게 실천할까’를 생각했다.



이 문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내 것이 되는가.

그렇게 실천하고, 실패하고,

다시 적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책에 적힌 방식이 아닌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대화법과 기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논어의 한 구절도 수첩에 적어 다니게 되었다.

논어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옛 책이 아니었다.

육아서가 되기도 하고,

자기계발서가 되기도 하고,

마음수양의 문장이 되었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 준

작은 수첩.

부적처럼 곁에 두었던 그 존재에게

이제야 조용히 말을 건네본다.

고맙다,

나의 실천수첩.




〈책을 삶으로 옮기는 연습〉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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