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과 그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오직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고, 결국 그 끝에는 눈물과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출간 당시 수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끝내고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목이 가진 무게다.
‘가시고기’라는 상징은 독자로 하여금 '부성애'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 제목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면서 이야기를 오히려 단순하게 만든다. 모든 서사가 결국 ‘희생’으로 귀결되며, 독자는 제목이 지시하는 감정선 위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은유가 풍성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는 대신, 오히려 서사의 자유로움을 옭아맨 셈이다.
또한 인물들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아버지는 희생의 화신, 아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 어머니는 거의 배제된 그림자에 불과하다. 각 인물이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비극적 감동을 위한 도구처럼 소비된다. 독자가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 눈물이 오래 마음속에 남지 않는 이유다.
더 나아가 작품이 제시하는 가족상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오늘날의 가족은 혈연만으로 정의되지 않고, 희생이 아니라 대화와 공존 속에서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가시고기는 ‘아버지의 자기 소멸=가족 사랑’이라는 낡은 공식에 갇혀 있다. 이 괴리는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결국 “저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라는 거리를 만들어낸다. 우리 아이들은 혹은 지금의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을까?
'가시고기'는 당시 독자들에게 눈물을 선물했지만, 눈물 너머의 성찰은 남기지 못했다. 제목의 상징에 얽매이고, 평면적인 인물에 갇히고, 현재와는 다른 가족상 속에 머무른 채 끝나 버린다.
그래서 책장을 덮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선택과 관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오늘날의 가족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