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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대유감 Jun 08. 2020

어스US : 시작과 끝

<1111> 과 <Les Fleurs>


조던 필(Jordan Peele)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평소 도플갱어 신화와 도플갱어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역시 도플갱어 이야기를 다루죠. 마치 신전에 제물을 바치듯 저도 언젠가 사악한 분신 도플갱어 영화를 꼭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도플갱어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어요. 자기 자신을 본다는 것이 원초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도플갱어를 단순히 말하면 "나와 똑같은 무언가"이다.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나"와 같은 무언가가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이를 구별해주는 것은 나의 의식뿐이다. 모든 시작은 "FIND YOURSELF"라는 문구가 적힌 건물에서 시작한다. 그 앞에 등장하는 징조도 있다. <JEREMIAH> 11장 11절이다. 그리고 사과를 버리며 아이가 그 건물로 들어간다. 


"1111" 은 이 말고도 계속 등장한다. 예레미아를 보여준 부랑자의 도플갱어(후에 아들이 해변에서 만나는 손에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의 이마에는 "1111" 이 있으며, 도플갱어 가족이 찾아오는 시간이 "11:11"분이며, 마지막 장면의 앰뷸런스 위에 "1111"이라는 숫자가 있다. 모든 "1111"의 공통점은 사건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재미있는 점은 성경 구절에서는 이를 "재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재앙은 과연 모든 이들에게 재앙일까? 로마인들에게 재앙은 곧 유대인들에게는 기회임을 의미한다. 1등이 아파서 시험을 못 보면(재앙) 2등, 3등에게는 1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누군가에게 재앙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시작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의 가족"이 죽는다는 것은 "너의 가족(도플갱어)"이 "진짜"가 될 기회이자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영화는 "진짜(나)"와 "가짜(도플갱어/너)"의 싸움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가 "FIND YOURSELF"가 적힌 집에 들어갔을 때, 2벌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처음 입고 있던 티셔츠는 "1986년 HAND ACROSS AMERICA"이라는 티셔츠였고, 그 위에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티셔츠였다. 캠페인 티셔츠가 사회적인 "나"라면 마이클 잭슨은 원래 "나"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의 티셔츠는 소녀가 원했던 티셔츠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인간은 "사회(타자)가 원하는 나"와 "원래의 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감독이 가지고 있는 도플갱어와 관련된 인식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공포, 부자연스러움, 두려움"이다. 히치콕은 이를 현기증으로 표현했다. 사회가 원하는 나는 "인종, 종교, 경제, 나라 등과 상관없이 굶는 사람들을 위해 손을 잡는 나"라면, 원래의 나는 "휴양지인 산타크루즈에서 돈을 쓰며 노는 나"이다. 히치콕은 부자연스러운 이 둘 사이에서 현기증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은 그곳에서 탈출하여 안정을 되찾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의 과거 회상을 통해 주인공은 처음부터 도플갱어였다는 점이 드러나고, 이를 눈치챈 아들은 가면을 뒤집어쓴다. 영화의 엔딩곡 <Les Fleurs> 가사 중 일부이다. 결론과 달라 보이는 엔딩곡의 가사를 들어보면 감독은 이 영화의 엔딩이 새로운 시작임을 암시하고 있다.  

  

"Light up the sky with your prayers of gladness and rejoice for the darkness is gone

당신의 기쁜 기도 소리로 하늘을 밝히고, 어두운 시대가 떠나갔다는 것에 환호해요                         


Throw off your fears let your heart beat freely at the sign that a new time is born

당신의 두려움을 던져버려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에 맞춰 자유롭게 심장을 뛰게 해 봐요" 


이를 감독의 말처럼 "미국"의 상황에 놓고 보면 이야기를 풀어보자.

번식과 번영을 위해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미국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중간에 같이 손을 잡자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제스처일 뿐 역사는 반복된다. 이제 박해받았던 그들이 신의 뜻으로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몰아낸다. 그리고 그들이 했던 것처럼 이제 손을 잡자고 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손을 잡을 것인가?


끝은 새로운 시작을 동시에 내포하며, 시작은 곧 끝으로 가게 되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는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과 "의미"도 같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도플갱어가 주는 두려움의 근본은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존재에 대한 도착증에 가깝다. 그래서 불길한 징조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으며, 공존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재앙(끝)과 시작이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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