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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Jul 30. 2023

울밍아웃, 부모님께 우울증을 말씀드리다

아들의 우울증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반응과 뱃속의 내게 있었던 비밀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말씀드리기로 마음먹은 이유

    처음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진단받았을 때, 나는 사실 완치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완치될 때까지는 본가에 와 있을 때는 약도 숨어서 먹고, 진료기록도 삭제하여 부모님으로부터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었다.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의 부모님의 반응이나 대응방식이 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군대 입대 전에도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께 요즘 좀 우울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부모님은 방안에만 있고 운동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내 탓을 했다. 산책할 때 나를 데리고 나가시거나 친구를 좀 만나라며 타박하시기도 했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부모님께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에 관해 말씀드리기, 즉 '울밍아웃'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냐 하면 그 이유는 사실 별 것이 아니었다. 8월 초에 예정되어 있던 몽골 가족여행 때 정신과 약을 가져가려면 영문 처방전을 출국 시 제출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들킬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 여행을 내 정신과 문제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알릴 것이라면 빨리 알려서 가족여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결국 주말에 본가에 갈 때 말씀드리기로 했다.


중요한 이야기는 밥상머리에서

    때는 저녁식사 중, 아빠가 퇴근길에 포장해 온 족발을 부모님과 함께 잘 먹은 후였다. 


"엄마아빠, 나 할 얘기가 있어요."


    착 가라앉은 내 목소리, 벌써 약간 목이 메기 시작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본 엄마가 자리에 앉아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거는 도움이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지난 4월 말에 많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정신과를 갔는데, 우울장애랑 불안장애를 진단받았고 지금 약 먹고 있어요. 약이 잘 들어서 다행히 지금은 우울감이랑 무기력감은 많이 사라졌고 불안만 좀 남아있는 상태예요."


    말을 좀 쏟아낸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목이 좀 걸리긴 했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말씀드렸다.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생각이 좀 많아 보였다. 얘기를 하면서 눈물이 맺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좀 복학하고 힘들어한다는 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많이 힘들었니?"


    엄마가 말문을 열었다.


"네. 그때는 많이 힘들었죠. 지금은 좀 괜찮아요."


"그래도 스스로 상태를 잘 판단해서 병원을 갔다는 게 다행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어서 당황했다. 나는 부모님이 쓸데없이 호들갑을 떨어대며 정신과를 간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신과를 가서 다행이라니.


"응, 그러게요. 병원에서 심리검사도 하고 했는데 경증 우울증은 아니고 약간은 중한 상태라고 했어요. 아마 몇 년 정도는 우울증 증상이 있긴 했는데 이번에 복학하면서 터졌을 것 같다고. 아마 군대 전부터 약간 우울했던 게 이번에 터지지 않았나 싶어요."


"아들은 원인이 뭐인 것 같아?"


    엄마가 물었다.


"글쎄요, 유전적인 거나 선천적인 것도 좀 있는 것 같고. 나는 어릴 때 분리불안도 있었잖아요? 어릴 때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계속 있었고. 나는 다음날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설사를 했잖아요. 선천적으로 불안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복학하고 인관관계도 새로 만들고 공부는 어렵고 스트레스랑 불안이 많이 오는 상황이 돼서 그게 터져버린 것 같아요."


"유전적인 거나 선천적인 게 그렇게 영향이 있겠냐."


    아빠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전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듯했다. 아마 친가 쪽 약간 먼 친척이 정신 관련 문제로 죽은 것 때문이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도 그렇고 책에서도 그렇고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영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대요. 혹시 친척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 있었던 경우가 있나요?"


"네 얘기를 듣고 보니 이모가 약간 조울증 증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해. 기분이 좀 왔다 갔다 하더라고."

    라고 엄마가 얘기하셨다. 아빠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면 낫는 데에는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한대?"


"최소 6개월에서 길면 2년 정도요."


"병원은 어디로 다니고 있니?"


"신림역 쪽으로요."


"엄마아빠가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


"그냥 크게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요. 나는 약 꾸준히 먹으면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고, 학교 교내상담도 신청해서 잘 다니고 있어요. 한 가지 지원해줬으면 하는 거는 병원비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병원비는 어떻게 했니?"


"생활비에서 따로 빼서 냈어요."


    그 뒤로 어떤 약을 얼마나 먹고 있는지, 의사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등 몇 가지 질문과 내 답변이 오갔다. 그러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들, 공부가 많이 힘들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다른 사람들은 서울대 입학도 못 하는데 서울대 입학도 큰 업적이야. 힘들면 휴학해도 되고 학교 1년 더 다녀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아빠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게 느껴지는 위로였다.


"그래요. 등록금도 얼마 안 하는데 1년 더 다니면 되지."


    나는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에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갔다.

    내 울밍아웃은 나쁘지 않게 이루어졌다.


엄마가 날 임신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과외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내 방에 찾아왔다. 할 얘기가 있어 보였다.


"아들, 아들이 선천적으로 불안이 좀 있다고 했잖아. 이 이야기는 엄마가 죽을 때까지 묻고 가려고 했는데,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


"무슨 얘기인데요?"


"아들 임신하고 너희 누나 어릴 때, 엄마가 많이 불안했었어. 아빠가 그때 바람을 피웠었거든."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는 네가 불안을 느낀 게 그때 엄마가 너무 불안해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빈말로라도 그 영향이 없다고는 얘기를 못하겠네요. 그래도 내가 왜 불안 해하는지에 대한 원인 중에 하나를 찾은 것 같아서 안심이 돼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누가 보아도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나 절망이 아닌 약간의 놀라움과 이해였다. 나는 내 불안의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일밍아웃 후에 바뀐 것이 있다면?

    많은 것이 바뀌진 않았다. 더 이상 약을 숨어서 먹지 않고, 부모님이랑 누나가 약간의 배려를 해준다는 것 빼고는. 그래도 그 작은 배려가 나는 고마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내가 우울장애랑 불안장애를 겪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과 우리 가족이 같아서 안심했고 내 질병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가족은 이전과 같았다. 내가 약간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리고 이 아픔은 언젠가 나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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