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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고고학 Nov 18. 2023

"나에게 최선은 누군가에게 최악일 수 있다."

"나에게 최선은 누군가에게 최악일 수 있다."


늘 머리와 마음에 맴도는 말이다. 


20대 초반에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신부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여전히 저 말은 내게 화두이다. 


세상이 나와 같지 않아서, 관계가 좀처럼 내 맘 같지 않아서, 


숱하게 실망하고 기죽고 상처 받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별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서운해지기 마련이다. 


다 나와 같지 않고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여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별히 올해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 마음 안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먼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세상과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에, 다시 세상과 사람이 낯설어졌다. 



이런 낯섦 속에서, 잔잔히 내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한 발 잠시 뒤로 물러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 세상 모습을 보면,


우리 모두 다 '사랑 받고 싶어서' 아둥바둥하며 살아가는 모습. 


각자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것. 


각자 자신들의 성숙도에 따라, 자신의 세계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 


가끔 찾아 오는 인생의 시련이나 고통은, 자기가 최선을 다하던 세계의 장벽, 세계의 외연을 넓혀주는 체험이라는 것.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뼈저리게 인생의 시련을 겪은 사람이야말로, 


그 시련의 시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걸 겪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볼 때, 감히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없다는 것. 


아니면, 여전히 그 아픔이 너무 크기에 누군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면 그걸 못 본 척 넘어가고 싶고 회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다 각자 최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담담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 속에서, 세상과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나도 부족한 인간이라 때로는 상처를 줄 수 있고, 나도 모르게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부족한 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나도 누군가의 부족함을 이해하며 받아줄 수 있다는 것.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선'을 느낀다. 


내가 선을 베풀었을 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그 선을 믿고 실천한 것에 보람을 느끼며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각자 자신들의 최선의 세계 속에서 아둥바둥하지만,


모두 그 최선의 세계는


자기가 '사랑 받거나 혹은 자기가 만족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라는 것. 


그것이 성숙도에 따라 각자 방법과 역량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지만,


아무리 악한 사람이더라도, 그 악의 이면을 보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기에, 잘못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삶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 세계가 결국엔 '사랑이자 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상은 조금 더 따듯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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