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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고고학 Nov 23. 2023

느닷없이 설움과 슬픔이 밀려올 때

느닷없이 불청객마냥 설움과 슬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조수간만의 차'처럼, 규칙적이고 정해진 시간과 정도, 그 깊이에 따라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느닷없이' 찾아온다. 


'설움과 슬픔'에 대한 감정을 '단어'로 이해되고, 익숙하지만,


'감정'의 영역에선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늘 새롭게 찾아온다.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만 달라질 뿐, 


똑같은 감정을 수없이 겪고 느껴왔음에도, 


여전히 '설움과 슬픔'은 통증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갑작스레 이 감정이 찾아올 때, 몇 가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몇 가지 신호 혹은 예비적 단계가 있는듯 하다. 


평소보다 더 밝고 활기찬 순간 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괜찮은 척 애쓸 때,


무엇인가 마음 속 깊은 한 구석에, 나도 모르게 애쓰며 빵빵하게 채워놨던 풍선이


갑작스레 '펑!'하고 터지면,


물밀듯 설움과 슬픔이 확 밀려온다. 


정신의 끈을 잡는다한들, 한 번 설움에 들어서면, 


그날 하루 웬종일 뭔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젖어들어


마치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젖어 아직 마르지 않은 신발을 억지로 신고 처벅처벅 무겁게 걸어다니는 느낌. 


이 순간,


정말 나를 따듯하게 환대해주고,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나 자신을 서스럼없이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사람, 어떤 공간, 어떤 집이 있었으면 하는,


정체를 모를 어떤 '그리움'이 함께 밀려온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감정은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조금씩 이 감정을 다루는 법을 스스로 배워가는 것 같다. 


수업을 듣는 중이건, 도서관에서 공부하건,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건


부지불식 간에 이 감정이 찾아오거든,


그 자리에서 잠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 스스로에게 애쓴다고 타일러주고 그럴 수 있다'며 도닥여준다. 


눈을 감고 잠시 마음을 살펴준다. 


마음 깊숙한 저변에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깊숙한 곳에


이런 부족함을 떠받쳐주는 어떤 은은하고 따듯한 장력이 느껴진다. 


그 힘에 잠시 내 마음을 맡겨둔다. 


그 은은함과 따듯함이 나를 받쳐주는 존재의 힘이 아닐까. 


그 존재의 힘을 넘어서, 무엇인가 나를 받쳐주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낀다.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감사한 것은, 이렇게 하느님의 현존을 어느 때나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설움이 자기폐쇄적이고 자기연민으로 가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나를 조용히 말없이 지탱해주시며


내 일상에 함께 해주신다는 것.. 정말 감사드린다. 


내 안에 아주 큰 '선'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죽을 때까지 따라야 할 '선'이다. 그 '선'이 나를 위로해주고 독려해주고 힘을 준다. 


오늘도 하루를 잘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그 '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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