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상준 Jun 24. 2024

좋아해 볼 용기

늦은 주말 오후,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다 답답한 마음에 잠시 산책을 하러 나왔다.


건물 앞 자그마한 벤치에 앉아 쉬던 도 중, 저 멀리서 누군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맞은편 건물 외벽 뒤로 몸을 숨기더니 곧바로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털썩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마치 어느 한 사람에게서 금방 재빠르게 멀어짐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서만 보이지 않길 원하는 제스처였다. 한참 앳돼 보이는 얼굴에 손에는 빨간색 하트가 그려진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건네어 주려했던 것인지 끝내 다시 건네어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전 이별 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해 질 녘, 덥지도 춥지도 않은 포근한 날씨에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기에 나를 포함하여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에 가득히 담겼다.


분명 그중 세상이 바쁜 누군가는 별 것도 아닌 어린 이별에 오열할 일이냐며 한심하게 쳐다보며 지나갈 일이다. 내지는 이별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법이며, 더 좋은 인연을 만날 기회라며 슬퍼해서는 안될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을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주저앉아 울던 뒷모습에서 나 또한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위로가 필요한 것인가 고민하였지만 다가가진 않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는 사람의 위로 따위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슬픔에 완전히 공감하고 위로해 줄 사람은 바로 본인뿐이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본인이 살아왔고 살아갈 삶 속에서의 공감을 실천한다.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불과 몇 달 전, 판다 푸바오가 한국을 떠날 때 오열을 하는 사람들의 뉴스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뉘앙스를 보였으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나 역시도 공감할 수 없었다.

분명 타인의 이상적인 잣대에서 조금 동떨어져버린 그들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어떠한 방향에서든 세상이 무채색이지 않고 음영과 색조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모두가 하찮은 것들을 경계하고 지나간 이별들에 담대하며 진취적이라면,

세상 아련한 멜로디의 이별노래와 첫사랑을 생각하며 우리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울리는 로맨스 영화들은 그저 따분한 노스텔지아에 불과하다. 그러한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공감받지 못함에도 기꺼이 좋아해 보고, 진심으로 슬퍼해보고. 나와는 달랐던 사람에게 상처도 받아보고. 또 새로운 것을 기다리고.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의 우리는, 다같은 한 음이 아닌 다양한 변주 속에 살아가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5월의 어린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