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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 뭐요? 하며 초밥이나 먹으러 갔을 터이다

by 시루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그 해 읽었던 백 여권의 책 중 최고로 선정했으나, 나는 그해 읽었던 몇 권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도 이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어서 기대를 가지고 첫 장을 시작했으나, 그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절반에서 잠시 덮고 말았다.



‘이거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다소 혼란스러운 내용을 이겨내고 끝까지 읽다 보면 대충 가닥이 잡힌다. 누군가는 책의 첫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나머지 400페이지를 쓴다는데, 저자는 마지막 15페이지를 위해 앞의 모든 페이지를 준비한 듯 보였다. 나처럼 인내심 없는 독자는 친구들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물고기 뭐요? 하며 덮고 초밥이나 먹으러 갔을 터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름에도 별이 들어간 그가,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뛰어난 학자, 똑똑한 사람. 처음에는 지진으로 인해 데이비드가 평생을 모아놓은 물고기 샘플들이 대부분 망가졌음에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죽었을 때에도, 인생의 큰 위기에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희망을 얻는다. 그러나 그를 알게 될수록 무언가 꺼림칙함을 느끼게 된다.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너무 집착한 나머지, 유전자의 우수성만을 추구하고 개량해야 한다는 ‘우생학‘에 빠져들고 만다. 신념이 극단적으로 깊고 좁은 사람은 위험한 법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해 온 사람일수록, 시대 변화에 더 비판적일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그리고 믿고 있는 것이 강력하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쉽게 함정에 빠진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제목은 어떻게 보면 저자가 데이비드에게 말하는 비판의 문장이다.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성과 열성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류인지 아닌지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3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이다. 공자도 ‘인’은 극단적인 두 가지의 선택지에서 고민하며 답을 찾는 과정 속에 있다고 하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 무엇이 정의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정의인지 판별하는 과정 속에서 그 가닥이라도 알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나도 내 신념이 너무 확고해서, 어떤 질문에 대해 너무 yes or no를 단언하는 게 아닌가 경계해야겠다. 나 자신의 전문성에 빠져서,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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