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야기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화학회사 연구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데이터가 아닌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없는 직업입니다. 주변에도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너는 쉴 때 뭐 해?라는 질문에 저 책 읽거나 글 써요 라는 대답을 하면 괴짜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스무 살이 된 후로부터 저는 늘 무언가를 쓰고 싶다, 그리고 잘 쓰고 싶다 라는 욕망을 인지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삶이 늘 그렇듯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사생활도 연애도 쉽지 않았고, 스스로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때였죠. 그래서 글에서 구원을 찾으려 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칠흑 같은 마음을 그저 적어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던 거죠. 그전까지는 주로 손으로 직접 썼는데, 방 한편에 두꺼운 노트로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며 성취감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 노트에는 제가 버려야만 겨우 나아갈 수 있었던 마음들이 내팽개쳐져 있었으니까요. 미안하다, 너와 나는 함께 갈 수 없어. 이 마음을 삶에 가져가기에는 너는 너무 무겁단 말이야.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외로워서요. 그리고 제가 남긴 글들을 혼자 읽는 게 고독해서요. 홀로 읽던 글을 한 명이라도 같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브런치북 제목은 고민할 것도 없었죠. 저는 늘 사람을 위한 글을 썼거든요. 제 마음속의 어떤 부분이 늘 무겁게만 느껴졌고, 그것을 지고 가는 게 힘들어 항상 글로 내뱉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제 시선이 늘 사람을 향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첫 브런치북 [슬프게도 내 애정에는 책임이 있었다]를 시작해 얼마 전에 완결을 했네요. 사실 30편까지밖에 못쓴다는 걸 알고 나서 당황했어요. 아직 엔딩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었거든요.
그렇게 약 1년 반의 시간 동안 브런치북에 저는 대부분 나를 위해서, 그리고 가끔은 상대를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쓴 글 또한 남에게 위로와 영향을 줄 때, 저는 아마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가게 되겠구나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쓴 글이 남에게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제가 늘 글을 썼던 이유였고, 앞으로 브런치 작가로써의 제 꿈일 겁니다.
우리는 길을 너무 쉽게 잃습니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는 저 조차 가끔은 이 길이 맞나 의심합니다. 사람들이 끝없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외로워서죠. 우리가 읽는 것도 이런 글을 읽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하는 연결을 원해서가 아닐까요. 글쓰기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사람들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압니다. 혹독한 세상이 인생은 원래 이기적이고 실속만 챙기면 된다고 유혹할 때, 우리는 그럼에도 따뜻함과 좀 더 꿈같은 이야기를 믿기 위해 글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저는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