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마토 공격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파벨만스>
대체가, 토마토가 위협이 될 만한 사물인가. 사과처럼 단단하지도 않고, 호박처럼 정말 거대할 정도로 자라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미량의 독성분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독이 위협적인 게 아니고, 토마토가 물리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 제목부터도 위협적인(?) <토마토 공격대Attack of the Killer Tomatoes>(1978)다.
1970년대 할리우드가 어떤 시대인가.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가 개봉하며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고, 이듬해,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도 언급되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대부The Godfather>(1972)가 있었고, 1편을 뛰어넘는 최고의 속편으로 손꼽히는 <대부2The Godfather Part Ⅱ>(1974)가 있었다. 걸출한 영화들을 지나,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 <에일리언Alien>(1979)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토마토 공격대>는 시기상으로 <미지와의 조우>와 <에일리언> 사이에 나왔다. 외계인 영화와 외계인 영화 사이, 딱 외계인 같은 영화다. 어디서든 역대급이라고 할 만큼 쟁쟁한 영화들이 쏟아진 10년 동안, 이 영화도 역대급 영화긴 하다. 역대급 최악의 영화다.
“과연 사상 최악의 영화는 어떤 것일까. 여기에 선정되려면 기획에서부터 연출, 음악, 미술, 연기 등 영화를 구성하는 제반요소 모두가 고르게 형편없는 질을 고수하고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감동은커녕, 저절로 튀어나오는 욕설을 제어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1)
<토마토 공격대>는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이 어려운 조건들을 놀랍도록 충실히 충족한다.
영화 시작 전부터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새The Birds>(1963)를 언급하면서, 1975년에 700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켄터키주 홉킨스빌Hopkinsville 마을을 공격했고, 사람들이 더는 <새>를 보며 비웃지 않는다고 하는데,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자막은 ‘새 떼도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킬러 토마토라고 우스울 일이냐’는 당당함이면서, 자신의 작품이 히치콕의 <새>를 이을 걸작이라는 존 드 벨로John De Bello 감독의 허세다. 이래 놓고,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조잡하기 짝이 없다. 설거지를 하던 여자가 싱크대 배수구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배수구에서 토마토가 튀어나온다. 혼자 싱크대를 탈출한 토마토가 여자에게 굴러간다.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대충 제목을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에 오프닝 자막이 은은하게 깔리면서 토마토가 그 뒤에 막 던져진다. 여자는 킬러 토마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헬기가 추락해 폭발하면서(의도한 게 아니다. 실제 헬기 추락 사고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정부 요원이 등장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모든 게 영화 시작 6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 영화의 엉성하고 허접한 부분을 조목조목 따지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실소를 넘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건, 당연히(!) 아무런 개연성 없이 튀어나오는 뮤지컬 장면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나오다 보니 어딘가에선 이 영화를 뮤지컬 영화로 분류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도 점점 발전하는데, 처음엔 대통령 비서를 만나는 시장 관리자가 혼자 노래를 부르다가, 두 번째엔 킬러 토마토와의 전쟁을 앞둔(그렇다. 심지어 킬러 토마토와 전쟁을 한다!) 군인이 뒤에 앙상블을 넷이나 두고 제법 진지한 안무까지 곁들여 부르고, 마지막엔 유행가 ‘사춘기 사랑’Puberty Love을 이용해 킬러 토마토를 전부 잠재운 딕슨이 언론사 신입이자 일종의 스파이였던 여자와 이름을 부르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손잡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영화가 끝난다.
이쯤 되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만하다.
그게 맞다.
사실, 존 드 벨로는 영화를 어느 경지에 도달했달 만큼 잘 찍었고, <토마토 공격대>는 일부러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이후에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여럿 내놓았다, 라는 세계선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선에선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세상 어떤 영화감독이 처음부터 졸작을 만들 생각으로 영화를 찍을까. 당연히 시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명작, 내지 수작을 찍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화라는 게 어디 무엇 하나 감독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느냔 말이다. 제작을 하려면 투자를 받아야 하고, 배우도 구해야 하고, 그 전에 괜찮은 각본도 있어야 하고, 간신히 영화를 찍었대도 배급이며 마케팅이며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런 와중에 자기 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이 저 내로라할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그러면 차라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졸작이라도 만들어 주겠다, 범부凡夫로서 마지막 발악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물론, 존 드 벨로 감독이 실제로 어떤 생각으로 <토마토 공격대>를 만들었는진 알 수 없다. 다만 이후 <토마토 대소동> 시리즈로 4편까지 속편이 제작됐단 점, 스물여섯 살에 <토마토 공격대>를 만들면서 연출, 제작, 각본, 편집, 음악까지 도맡아 했던 점(제작비가 고작 10만 달러였기 때문이었겠지만), <토마토 공격대>에서 찾을 수 있는 숱한 영화 패러디와 사회 풍자 요소들을 보자면 감독의 영화적 야심이 전무하진 않았으리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마저도 <토마토 대소동> 시리즈 말고는 별로 주목할 만한 영화가 없고, 저예산 액션 영화 <블랙 돈Black Dawn>(1997) 이후로는 영화 관련 활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아,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감독의 창작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이 ‘일부러 엉터리’ 영화로 도달하고자 했던 비전은 영화 내에서 확실히 보인다. 그것은 패러디와 무성의로 빚어내는 풍자로, 대상은 영화와 미국 사회 제도 그 자체다.
영화 전체가 <지구가 멈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1951), <괴물The Thing>(1951),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1953), <고지라ゴジラ>(1954) 같은 1950년대 유행했던 ‘괴물/외계인’ 영화의 철저한 패러디로 점철돼 있다. 뿐만 아니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1959), <싸이코Psycho>(1960), <죠스> 같은 영화의 패러디와 오마쥬가 곳곳에 스며있다.
영화에서 자막을 사용하는 방식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지금 나오는 소파랑 의자를 할인해서 판매하니까 얼른 사라거나, 캘리포니아 금문교를 보여주면서 자막은 뉴욕이라질 않나(그마저 New York도 아니고 New York?이다), 같은 배경에서 그저 좌우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볼티모어Baltimore 따위로 자막만 달면 다른 공간이라는 당당함. 이쯤 되면, 촬영과 편집으로 이미지를 배치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의 문법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정부는 킬러 토마토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데, 그 책임자로 선정한 메이슨 딕슨은 아무도 모르는,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이고, 꾸려주는 팀도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다. 과학자가 만든 사이보그는 로봇 다리가 한쪽뿐이라 같은 자리를 빙빙 돈다. 대통령 비서 리처드슨은 언론에 거짓 정보를 흘리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태를 무마하려 하고, 대통령은 계속 펜만 바꿔가며 하등 필요 없는 서류에 서명만 하다가, 꾸겨버린다. 정치인들은 회의 내내 잠만 자고, 당연히 킬러 토마토와의 전쟁에서 군인들은 패배하고 사회는 쑥대밭이 된다. 그 와중에도 남편을 잃은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기자는 아무 쓸데 없는 질문을 던지며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촌철살인이 있는 영화다.
조금만 더 가만히 들여다보면, 철저히 B급 정서를 유지하는데도 의외로 괜찮은 지점이 보인다. 기본적으로 1970년대 필름 특유의 색채가 주는 미술적 아름다움이 있어서 화면이 예쁘다. 핫핑크 드레스, 쨍한 녹색 치마, 코발트블루 저지 같은 패션, 노란색 커튼 앞에 놓인 패턴 소파, 올리브그린으로 톤을 맞춘 호텔 벽지와 소파에 브라운 톤 의자와 책상 인테리어, 그 안에 무심히 걸려있는 다양한 그림들, 파스텔 톤 하늘 배경에 오렌지색 의자가 한 구석에 모여있는 미니멀한 컷 등을 보자면 이 영화가 <시계태엽 오렌지>와 같은 시대의 영화가 맞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진지하게 플롯을 분석해 보면, 전체 구조는 의외로 탄탄하다. 사건이 발생하고, 심각성이 고조되고, 주인공 딕슨이 과제를 부여받고, 여러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발생하지만, 어쨌든 딕슨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상황의 규모가 커지고, 흑막이 있었다는 반전에, 킬러 토마토 무리와 맞서는 마지막 시퀀스에는 수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돼서 클라이맥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킬러 토마토가 유행가 ‘사춘기 사랑’을 들으면 원래대로 쪼그라든다는 문제 해결 방식 자체는 코웃음이 나오지만, 앞서 이 해결의 떡밥을 두 번이나 보여줬다는 점에서 사실 영화 내에서는 제법 개연성이 있는 설정이었다. 그러니까, 각본 자체는 영화에 필요한 3막 구조를 제법 잘 구축하고 있다. 뭘 일부러 못하려면,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토마토 공격대>는 관객을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감독의 영화 <졸업The Graduate>(1967) 속 마지막 장면의 더스틴 호프만으로, 캐서린 로스로 만든다. 조소든, 정말로 재밌어서든, 한껏 웃으면서, “이런 것도 영화냐?” 하다가, 표정이 굳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진짜, 영화가 뭘까?
좀비 영화를 찍던 촬영장에 진짜 좀비가 나타났다. 한여름 푹푹 찌는 폐정수장에서 실제 좀비에게 물려 죽는 위협을 감수하면서, 다분히 카메라를 의식하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배우의 연기와 난데없이 화면에 등장하는 스태프, 시종일관 불안한 핸드헬드Hand-Held 촬영, 흐름이 뚝뚝 끊기며 허술한 티가 팍팍 나는 각본에도 불구하고, 감독 히구라시는 끝까지 카메라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진짜’가 나온다며 좋아한다.
점점 광기에 물들어가는 감독과 좀비로 변한 스태프를 피해 도망치다가, 전부 죽거나, 좀비가 되거나, 죽이고 혼자 살아 남아 피칠갑이 된 주연 배우 치나츠는 건물 옥상으로 향한다. 그녀는 옥상 위, 좀비를 만든 의식의 상징인 피로 그린 펜타그램Pentagram 위에 서고, 어째선지 계속 흔들리는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B급, 아니, 아무리 후하게 쳐준들 C급도 아까울 영화 <One Cut of the Dead>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여기까지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カメラを止めるな!>(2018) 초반 37분 내용이다. 이번에야말로 “뭐 이딴 영화가 다 있냐”며 단전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욕지거리가 올라오려는 순간, 시간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빠르고, 싸고, 퀄리티는 그럭저럭”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값싼 영상을 맡아 찍던 히구라시는 8월에 개국하는 좀비 전문 채널의 개국 기념 영화를 만들어 달란 의뢰를 받는다. 이 영화엔 두 가지 “핫한 포인트”가 있는데, 30분간 생중계로 방영된다는 점, 카메라 한 대로 한 번도 컷을 끊지 않고 촬영할 거란 점이었다. “그럴 배짱 없으니까 당연히” 그런 말도 안 되는 기획은 거절했을 거란 아내 나오의 예상과 달리, 그는 그 의뢰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찍으려고 보니 현장은 더 가관이었다. 심각한 발연기면서 조금이라도 어렵거나 불편한 장면은 소속사 핑계를 대며 몸을 사리는 아이돌 출신 주연 배우, 매사에 과하게 진지하고 깐깐해서 대본에 불만이 많은 상대역, 조연 배우들은 술을 안 마시면 손이 떨리는 알코올 중독이거나, 연수가 아닌 물을 마시면 설사를 한다거나, 대본 리딩 현장에 갓난아기를 데려오거나. 그 유부녀 배우에게 자꾸 작업을 건다. 촬영 감독은 요통이 심해 핸드헬드 원 테이크 촬영은 무리라고 하면서도 의욕만 앞서는 보조 촬영 감독에겐 절대 카메라를 안 쥐여주려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연습을 하고, 한 달이 흘러 생방송 당일, 이제 무사히 찍기만 하면 되는데, 배우 두 명이 촬영 펑크를 낸다. 급하게 히구라시 감독 본인과, 촬영 현장에 딸 마오와 함께 놀러 온, 원래 배우였(지만 배역에 너무 몰입하면 자아를 잃어서 그만둔)던 그의 아내가 대타로 투입된다. 그렇게 불안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채, ‘원 컷 원 테이크 생중계 방송’이 시작되고, 아니나 다를까, 온갖 문제들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제서야, 관객은 <One Cut of the Dead>의 화면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전말을 알게 된다. 그게 얼마나 짠한지, 오죽하면 영화 엉망이라고 욕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고 싶어진다.
“부디 지나친 애드리브는 삼가 주시기” 바란다던 감독 본인부터 억눌러 왔던 작품에 대한 열망이 터져 나와(다시 말하지만, 세상 어떤 영화감독이 처음부터 졸작을 찍고 싶었겠나!) 시작부터 애드리브를 남발하고, 딸 때문에라도 술을 끊겠다던 배우는 그새를 못 참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다. 돌발 상황이지만 이어가라는 카메라 뒤 스태프의 스케치북.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애드리브의 향연. 말 그대로(!) 위아래로 쏟아내는 구토와 설사. 제작자는 촬영을 중단하려는데, 감독 지망생이던 마오는 넘치는 열정으로 자신이 직접 스태프들을 진두지휘한다. 배우를 분장시키고, 소품을 던지고 받고, 피를 뿌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넘어지고, 대본을 흘리고,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열심히는 하지만 전혀 손발이 안 맞는 엉망진창 상황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웃픈 감정이 절로 든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촬영은 계속된다. 카메라는 절대 멈추면 안 되니까.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망가진 지미집 대신 인간 피라미드를 쌓고, 마오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히구라시의 어깨에 올라 목말을 타고 촬영하며, 방송 종료까지 모두가 힘을 모아 버티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정말이지, 영화가 뭐라고.
<토마토 공격대>를 보고 들었던 의문에 <카메라를 절대 멈추면 안 돼!>는 B급 좀비 호러 코미디를 가져와 답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맘대로 되지 않아도, 설령 그 결과가 아주 형편없대도 카메라를 멈출 수 없는, 그게 영화라고. 영화는 계속돼야 한다고.
한 번도 안 끊고 촬영해 생중계로 내보내겠다는, <One Cut of the Dead>를 만들기 위한 과감하고 작위적인 설정은 좁게는 극중극의 가장 특징적인 방법론이면서, 넓게는, 중간에 블로킹을 통해 편집점을 가져간다고 해도, <로프Rope>(1948), <버드맨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2014), <1917>(2019), <보일링 포인트Boiling Point>(2021) 같은 영화의 중요한 실험적 기법이면서, 당연히 전부가 ‘원 샷 원 테이크 생중계 방송’인 인생에 관한 은유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명백히 은유로 읽히는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영화 내에서는 철저하게 그저 영화를 찍기 위해 열심인 사람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부들부들 떨면서 인간 피라미드를 쌓듯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영화고 인생이라는 계몽의 언어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은 쿨한 태도.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토마토 공격대> 수준의 좀비 영화라는 바뀌지 않는 결과야말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놀랍고도 영리한 성취다.
이 성취는 고스란히 흥행 성적으로 나타났는데, “메타 영화는 먹히지 않는다. 좀비영화도 안 된다. 이런 걸로는 관객 호응을 못 얻으니 당장 가지고 나가라”며 다른 제작사에서 까이고2) 결국 전문 제작사가 아닌 극단 겸 영화학교의 워크숍 작품으로 제작비 300만 엔, 초저예산 독립 영화로 만들어져 고작 2개 관 상영으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350개 관으로 확대, 일본에서만 30억 엔을 벌어들이며 제작비 대비 1,000배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배우들에게 추가로 돌아가는 수입은 없었으며, 일본 영화 시스템상 감독에게 돌아가는 성과급도 없었다. 다행히 우에다 신이치로上田慎一郎 감독은 “특별 보너스도 받았고, 부가판권 수익도 생겨서” “이사도 했다”지만3), 이렇게 한 번 만들기도 힘들고, 설령 잘 돼도 내가 돈을 못 벌 수도 있는데, 대체 누가, 계속, 왜, 영화를 만드는 걸까.
어린 소년 새미 파벨만은 무섭다. 영화관은 엄청 어둡고,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인 같다고 들었다. 아빠는 그 기술이 얼마나 놀라운지만 가르쳐주려 하고, 엄마는 꿈 같은 거라는데, 새미에겐 꿈도 무섭다. 그래도 부모님을 따라 일단 영화관 안으로 들어간다.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새미는 가만히 영화를 본다. 자동차가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기차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대로 뒤집혀 날아간다. 그 순간, 새미도 기차에 들이받혔다. 그가 평생을 마주할 영화라는 기차에.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The Fablemans>(2022)에서 어린 새미가 생애 첫 영화인 세실 B. 드밀Cecil B. DeMille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1952)를 보며 짓는 표정은 세상 모든 씨네필Cinephile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영화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고, 사람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내는지를 그 어떤 영화보다 잘 보여준다.
그날 밤, “영화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꿈”이라던 엄마 미치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된다. 예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새미는 그 장면 그대로 꿈을 꾼다. 얼마 후, 선물 받은 모형 기차 세트를 이용해 새미는 그토록 자기를 사로잡았던 영화 장면을 아빠의 카메라로 찍어 재현한다. 자신이 만든 첫 영화를 문자 그대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볼 때부터 새미에게 영화는 욕망의 재현이자 현실의 통제다. 새미는 계속 영화를 찍는다. 여동생들을 배우 삼아, 화장지를 소품 삼아 찍고,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가서는 요령껏 촬영 장비를 만들고, 필름에 구멍을 뚫어서 총이 진짜 발사되는 것처럼 특수효과도 준다. 그렇게 새미 파벨만은 영화와 함께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소년 새미 파벨만은 무섭다. 새미를 그렇게나 괴롭혔던 학교의 잘나가는 친구 로건이 자기한테 대체 왜 그랬냐며 소리를 지르고 따져 묻는다. 이유인즉 새미가 만든 졸업 기념 영화 속 자기의 모습이 자기는 도저히 닿지 못할 정도로 멋져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
로건은 새미의 행동에 혼란스럽고, 현실과 영화의 괴리에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새미를 괴롭히려고 온 양아치 채드의 엉덩이를 한껏 걷어차 주고는, 대마초 한 대를 피워 물고 떠나며 새미에게 한 마디 건넨다. “인생은 영화랑 달라.”
그 말 그대로였다. 새미의 실제 현실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보리스(새미 외할머니의 오빠)가 집에 오기 며칠 전, 아빠 버트는 새미에게 외할머니를 잃고 우울해하는 엄마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얼마 전에 떠났던 캠핑을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보리스가 떠난 후 아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찍었던 필름을 돌려보던 중, 미치가 버트의 직장 동료이자 가족과도 각별한 사이인 베니와 쌍방의 묘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걸 포착한다. 찍는 동안 둘 사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신이 전부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영화에서마저 배신당한 사실에 새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영화에선 그 부분을 전부 들어냈지만, 이후 새미는 미치와 베니를 피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새미의 원인 모를 무시를 견디지 못하던 미치에게 자신이 따로 편집해 뒀던, 둘의 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영화를 보여주고,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버트의 이직 때문에(미치가 베니를 떠나려는 이유로도)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사 가고, 새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아빠는 애써 외면한다. 끝내 새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둘은 이혼하기로 합의한다. 이때 새미가 말싸움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그 장면을 카메라로 찍는 자기를 상상하는 장면은 영화감독이 얼마나 외로운 직업인지, 동시에 영화를 찍는다는 게 새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니 그 후에 “어떻게 저 난리를 겪고도 영화를 만드냐”며 여동생에게 한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저 “인생은 영화랑 달라”라는 말은, 무엇 하나 좋은 일이 없던 와중에, 어느 모로 보나 자기와 가장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으니, 어찌 와닿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새미는 대답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끝에 가선 여자를 차지했잖아.” 둘은 사이좋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헤어진다.
물론, 내내 영화가 얼마나 멋진 예술인지, 영화를 찍는다는 게 어느 정도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인지 보여주다가, 사실 이렇게 힘든 게 삶이다, 인생은 영화랑 다르다는 결말로 끝나는 영화였다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이 아니다.
1년 후, 방송국에서 온 편지를 받고 그곳을 찾아간 새미에게 TV 시트콤 제작자는 “영화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역사상 최고의 영화감독을 소개해 주겠다”며 그를 옆 방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새미는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영화감독 존 포드John Ford를 만난다. 그는 새미에게 다짜고짜 벽에 있는 그림을 보고 보이는 걸 얘기해 보라고 한다. 새미는 말한다. “남자 둘이 말을 타고 뭔갈 찾고 있어요.” 존 포드는 말을 끊고, “아니, 아니, 아니, 지평선은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새미는 “지평선은 바닥에 있다.”고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한다. 존 포드 감독은 “이번에는 저쪽 벽에 있는 그림을 묘사해 보라”고 시킨다. 이번에도 새미는 “카우보이 다섯 명이…” 하는데, 역시나 감독은 “아니, 아니, 아니, 빌어먹을 지평선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지평선은 그림 꼭대기에 있다.”고 새미는 대답한다. 존은 새미에게 이리 오라더니 말한다. “명심해라. 지평선이 바닥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꼭대기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어. 자 행운을 빈다. 이제 내 앞에서 꺼져.”4) 친절하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와 무언갈 깨달은 표정으로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던 새미를, 지평선이 화면 가운데 오게 찍던 카메라가 각도를 살짝 올려, 지평선이 바닥에 오게 하고는 영화가 끝난다.
이 ‘지평선론’은 작게는 영화에서 흥미로운 구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창작 방법론이며, 크게는 영화랑 다른 인생에서 영화가, 예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스필버그식 대답이다. 거기 있는 사람과 벌어지는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 현실은 현실 그 자체로 거기에 있다. 삶은 자기 맘대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물론, 영화라고 해서 모든 걸 통제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시선을 바꿔 볼 수는 있다. 지평선을 바닥에 깔거나 꼭대기에 걸고, 흥미로운 씬을 만들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영화감독이 할 일이고, 각자가 자기 인생이라는 영화의 영화감독인 모든 사람이 할 일이며, 그러는 데 필요한 게 예술이라고, 평생을 영화에 바쳐온 노장은 몸소 보여준다. 영화가 전통적으로 ‘카메라로 찍어야’ 성립되는 장르라는 걸 고려하면(요즘은 AI의 발달로 카메라 없이 만드는 영화도 가능해졌지만), 이 약간의 틸트업Tilt-up은 하나의 카메라에게는 작은 움직임이지만, 영화 그 자체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장면은 아주 간단하게 관객에게 유머와,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영화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까지 모두 담아냈다는 점에서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더 샷’The Shot5)에 버금간다 할 수 있다(심지어 Shot에는 ‘촬영’이라는 뜻도 있다!).
어려서부터 영화에 빠져 산 유대인 꼬마가 끝내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이건 노골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자신의 자전적 영화다. 실제로 약간의 변경된 설정을 제외하고는 전부 감독 자신의 청소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모님의 직업, 둘의 이혼, 어머니의 재혼, 심지어 가족 여행에서 찍은 필름을 편집하다가 어머니의 불륜을 알게 되고, 그걸 따로 편집한 영화를 옷장에서 어머니에게만 보여줬던 일까지 모두 실화로, 스필버그의 여동생들도 시나리오를 읽어보고서야 이 일을 처음 알게 됐다고.6)
<파벨만스>는 현시대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며, 그가 평생을 사랑한 영화에게 바치는 절절한 연애편지인 동시에, 삶에 예술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답하는 최소한의 몸짓이다.
<토마토 공격대>를 보고 든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B급 좀비 영화로 ‘영화는 이렇게 작동한다’고 답하고, <파벨만스>는 그 어려운 영화를 누가, 왜 만드는지, 영화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지, 삶에 영화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줬다.
킬러 토마토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촬영장에 좀비가 나타나도, 절대 카메라를 멈추지 않는 이야기꾼Fable―Man이 있는 한, 영화는 계속된다. 영화를 볼 때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스크린에 몰두하는 또 한 명의 새미 파벨만으로서, 아니, 그보다는, 그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관객 중 한 명으로서, 내가 영화에 바라는 주문은 단 하나다.
미주
1) 박찬욱, 「누가 토마토를 두려워하랴」, 『박찬욱의 오마주』, 마음산책, 2005, 384쪽.
2) 이화정, 「<엑시트> 이상근 감독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이 만나다, "평범한 소시민 캐릭터가 우리에게는 더 통한다"」, 『씨네21』, 2019-09-26,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3928(2025.12.01 접속).
3) 같은 기사(2025.12.01 접속).
4) 실제로 들었던 말은 “만약 네가 지평선이 왜 상단과 하단에만 있는지, 그리고 중간에는 없는지를 말할 수 있다면 넌 꽤나 좋은 감독이 될 거다”였다고. "WHERE'S THE HORIZON?!!!" WHEN 15-YEAR-OLD STEVEN SPIELBERG MET JOHN FORD, Austin Film Society, https://www.austinfilm.org/2014/12/wheres-the-horizon-when-15-year-old-steven-spielberg-met-john-ford/(2025.12.05. 접속).
5) 마이클 조던이 1998년 NBA 파이널 6차전에서 유타 재즈를 상대로 경기 종료 6.6초가 남은 상황에 던진 슛. 이게 들어가면서 시카고 불스는 두 번째 쓰리핏(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6) Whipp, G. (2023, February 21). Steven Spielberg Gave His Sisters Veto Power on "The Fabelmans." They Gave Him Their Trust. Los Angeles Times. https://www.latimes.com/entertainment-arts/awards/story/2023-02-21/steven-spielberg-gave-his-sisters-veto-power-on-the-fabelmans-they-gave-him-their-trust(2025.12.03 접속).
참고문헌
1. 박찬욱, 「누가 토마토를 두려워하랴」, 『박찬욱의 오마주』, 마음산책, 2005
2. 이화정, 「<엑시트> 이상근 감독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이 만나다, "평범한 소시민 캐릭터가 우리에게는 더 통한다"」, 『씨네21』, 2019-09-26,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3928
3. "WHERE'S THE HORIZON?!!!" WHEN 15-YEAR-OLD STEVEN SPIELBERG MET JOHN FORD, Austin Film Society, https://www.austinfilm.org/2014/12/wheres-the-horizon-when-15-year-old-steven-spielberg-met-john-ford/
4. Whipp, G. (2023, February 21). Steven Spielberg Gave His Sisters Veto Power on "The Fabelmans." They Gave Him Their Trust. Los Angeles Times. https://www.latimes.com/entertainment-arts/awards/story/2023-02-21/steven-spielberg-gave-his-sisters-veto-power-on-the-fabelmans-they-gave-him-their-trust
5. Attack of the Killer Tomatoes, Directed by John De Bello, Four Square Productions, 1978.
6. The Fablemans, Directed by Steven Spielberg, Amblin Entertainment & Reliance Entertainment, 2022.
7. カメラを止めるな!, Directed by Shinichirou Ueda, ENBU Seminar & Panpokopina,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