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에서 글쓰기 1. 결락의 상황

―무라카미 하루키 「철도 파업에 대하여」를 읽고

by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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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똑같이 ‘평상시와 다른 일’이라도 여느 때 아무것도 없던 곳에 무엇이 생기는 쪽보다, 여느 때는 무언가가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마이너스적 상황, 결락의 상황 쪽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1)


억지로 하루키와 나와의 공통점을 짜내자면, 아마 누구에게 물어본들 반 정도는 이런 쪽이라고 할 테지만, 나도 플러스보단 마이너스적 상황이 더 좋다. 아무래도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플러스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탓이려나.

내가 주로 아침에 러닝을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침엔 사람이 적다. 방학 중인 대학교의 경우엔 정말이지, 경비원이나 미화원 한둘을 제외하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고 당당히 자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럴 때 오롯이 내 숨소리, 발소리, 주변의 새소리, 바람이 내 살갗을 에는 소리(요즘엔 너무 춥다)를 듣고 있으면 왜 달리기를 명상이라고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해가 뜨기도 전, 아주 깜깜한 새벽에 나와 조금씩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짙은 푸른색으로 변하고, 저 지평선 밑바닥서부터 난색이 올라오다가 끝내는 너무 눈이 부셔서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한 일출이 되는 과정이 그렇게 좋다. 누군가 당장 100억을 주는 대신 죽을 때까지 이 광경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100억 따위 필요 없으니 눈 앞에서 꺼지라고 하겠다.

한창 농구에 빠져 있던 중학생 시절, 운동회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농구가 하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운동장에서 농구 좀 할 수 있겠냐고 선생님께 여쭤보니까 안 된다고(아마 단호하게 거절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십 오 년은 지난 일을 지금 와서 세세히 기억할 순 없다) 했는데, 그 이유만은 정확히 기억한다. “운동회가 끝난 후엔 운동장이 텅 비는 게 남들 보기에 좋다.”는 게 그것이다.

당최 무슨 소린가 싶었다. 운동장은 학생 것 아닌가, 운동회야 어찌 됐든 나는 농구가 하고 싶단 말이다, 왜 한창 뛰어놀 청소년의 소망이 다 큰 어른들의 사정 따위에 맞춰 꺾여야 하나, 같은 반발심이 단전에서부터 곧 폭발할 화산의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끓기만 하고 폭발은 하지 않았다. 아마 대충 알겠다고 하고 집에 돌아갔던 걸로 기억한다.

좀 큰 후에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 운동회라는, 운영 측(이 경우엔 학교) 입장에선 제법 큰 이벤트를 별문제 없이 치른 후였으니 괜히 누군가 다치거나 혹시라도 외부에 운동회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만한 경우의 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간단하게, 굳이 귀찮을 일은 사양하고 싶었겠지. 아마 그런 때에 귀찮음을 감당해야 하는 선생님이란 사람들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을 거란 건 이제야 이해하는 일이다.

거기에 더해, 그들 나름도 이런 ‘결락의 상황’을 즐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항상 학생들로 시끌벅적한 운동장이 고요하게 텅 비는 비일상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음미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도 여태 그 일이 기억에 남은 걸 보면 어지간히 억울하긴 했었나 보다.


미주

1) 무라카미 하루키 저, 김난주 옮김, 「철도 파업에 대하여,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문학동네, 2012,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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