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손, 번뜩이는 재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읽고

by 이수영

셔츠 소매에 비해 유독 입체적으로 두드러진 오른손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연필을 쥐고, 종이에, 단추가 달린 왼팔 셔츠 소매를 간단히 스케치 하고 있다. 명암도 표현돼 있지 않고, 원근법이 드러나지도 않은 셔츠 소매는 간단한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소매 안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손으로 이어지면서 왼손은 마치 종이에서 튀어나온 듯 입체감을 띤다. 그리고 그 왼손이 자기를 그리고 있는 오른손의 셔츠 소매를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주로 착시현상을 이용한 작품을 그렸던 네덜란드의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의 <그리는 손>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표지로 이 그림을 선택한 출판사의 안목은 뛰어났다. 시작과 끝을 모르겠는 이 그림만큼 보르헤스의 작품을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미지는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어렵다. 처음 읽으면 뭐가 뭔지,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소설 속 가상의 인물, 가상의 사건을 마치 진짜 현실 세계에서 살았던 인물, 벌어진 사건처럼 주석까지 달아가며 서술한다. 이야기는 미로처럼 빙빙 돈다. 그중에서도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하 「오솔길」로 칭함)은 “보르헤스 픽션들의 기본픽션으로 말할 수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깊이 파고들자면, 이미 그러하듯이, 몇 편의 논문 정도는 쓸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보르헤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다. 보르헤스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특히, 「오솔길」은 스파이 추적 스릴러라는 장르물에 초현실적 요소가 가미된 성격을 띤다.

리차드 매든 대위에게 정체를 들킨 독일군 스파이 ‘나’는 그를 피해 도망간다. 이미 동료 스파이는 죽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기차가 출발할 때, 매든 대위는 간발의 차로 ‘나’를 놓친다. ‘나’는 간신히 40분의 시간을 번다. 이런 긴박감과는 대조적으로, 힘들게 만난 ‘나’와 앨버트의 대화는 굉장히 관념적이고 신비롭고, 심지어 여유롭기까지 하다. 앨버트는 ‘나’의 조상 추이펀이 쓴, 미로 그 자체인 소설에 관해 얘기해준다. 그 소설에서 나타나는 “무한하게 연속된 시간들”, “영원히 두 갈래로 갈라지”는 미래. 이건 지금에서야 대중 매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행우주의 개념과 다름없다. 게다가 그 소설의 제목은 실제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다. 이제 독자는 점점 혼란스럽다.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이 소설이 소설 속에서 얘기하는 그 소설인지, 내가 소설을 읽지 않았을 때의 평행 우주를 생각하다가, 내 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질 것만 같다. 그러다 퍼뜩, 깨어난다. 그 ‘킥’을 일으킨 건 총성이다. ‘나’는 자기를 쫓아온 리차드 매든 대위의 모습을 보고 앨버트를 총으로 살해한다. ‘나’의 행동에 대한 개연성을 알 수 없는 독자는 어리둥절하다. 의문은 금방 풀린다. 그 사건은 신문에 실렸고, 앨버트가 지명을 가리킨다는 걸 안 독일군은 그곳에 폭격을 가해 영국군의 공격을 늦췄다.

이런 플롯은 정확히 3막 구조를 따르고 있다. 1막은 ‘나’의 정체가 드러나서 기차를 타고 도망치기까지, 2막은 ‘나’가 앨버트를 만나 추이펀의 얘기를 듣기까지, 3막은 ‘나’가 앨버트를 쏘고 그 이유가 밝혀지기까지다. 추리 소설의 특징 또한 발견할 수 있는데, 작품 초반 ‘나’가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의 이름”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 인물이란 누구인지 독자가 궁금하고 추리하게 했다가 가장 마지막에 가서 의문이 풀리는 건,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류의 탐정 소설에서 마지막에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것과 같다.

앨버트와 ‘나’의 대사를 돌아보면 굳이 앨버트를 살해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쓴 것도 의미심장하다. “해답이 장기인 수수께끼에서 사용되어서는 안 될 유일한 단어가 어떤 것”이냐는 앨버트의 질문에 ‘나’는 “장기라는 단어”라고 답한다. 이 대목은 ‘장기’를 ‘앨버트’로 바꾸기만 하면 ‘나’가 앨버트를 꼭 죽였어야만 했던 이유가 구조적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나’는 앨버트가 해답인 수수께끼에서 ‘엘버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 답을 맞췄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독자의 장르적 쾌감은 극에 달한다.

결말을 읽고 놀란 독자는 소설의 앞부분에서 리델 하트가 『유럽 전쟁사』에서 썼다는 얘기로 돌아가 이야기의 퍼즐을 다시 짜 맞춘다. 리델 하트는 실제로 1895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던 영국의 군사학자이자 전쟁사가로, 그가 실제로 집필한 책을 소설의 가장 앞에서 언급함으로써 뒤에 이어지는 모든 허구의 이야기에 가상의 진실성을 더한다.

굳이 보르헤스의 소설이 “모든 가능성을 동시적으로 포착하는 세계”이고, “서로 모순되는 사건들까지도 수평적 전개가 가능한” 소설임을 공부해서 알지 않더라도, 이런 장르적 재미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준다. 다만, 독자가 충분히 능동적일 필요는 있다. 앞서 말한 특징들로 인해 수동적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보르헤스가 만든 텍스트의 미로에 갇혀 꼼짝없이 왼손이 오른손을 그리는지, 오른손이 왼손을 그리는지도 모를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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