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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Jul 26. 2020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욕 먹은 날



얼마 전, 브런치에 올린 내 글에 오마이뉴스 기자님의 댓글이 달렸다. 나의 이전 글 '나는 대한민국 무주택자입니다'를 오마이뉴스에 싣고 싶다는 것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것도 감사한데,  시민기자의 기사로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기사가 포털 메인에 올라왔다는 오마이 뉴스의 연락을 받았다.





기사로 올라 온 내 글. 제목은 기사문에 맞게 바뀌었다.




 올려주신 링크를 잽싸게 따라가 보았다. 오 마이 갓! 벌써 댓글이 200여 개가 달려있었다. 그 순간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까 말까 고민했다. 내 기사에 어떤 내용의 댓글이 달릴지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은 올리되 댓글은 보지 말자고 결심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글을 올렸으면 대중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일기장에 혼자 쓴 글이 아니니까.



예상대로였다. 내 글의 댓글창에는 온갖 욕설과 조롱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대뜸 '아니 이 아줌마야'라고 시작하는 댓글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송곳으로 후벼 파듯이 비꼬는 댓글도 있었다. '정신승리', '루저' 등 이미 예상했던 단어가 포함된 댓글도 절반이 넘었다. 도저히 다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댓글창을 닫아 버렸다. 아마 그것을 다 읽었다면 그날 밤에는 잠도 못 잤을 것이다. '괜히 기사로 올린다고 했나'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욕을 하루 동안 다 먹으니 배는 안 부르고 속만 쓰렸다. 생전 처음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욕을 한 번에 먹은 것은. 브런치에서 매번 독자들의 공감과 위로만 받다가 갑자기 도마 위에 올라가 날카로운 사시미칼로 회쳐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사회적인 글을 쓰는 것은 이렇게 힘든 거구나.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다가는 글이고 뭐고 제 명에 못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화끈하게 욕고나니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조금 덜어진 것도 사실이다. 남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글을 쓰는 성향 때문에 가끔 글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좋은 반응과 관심만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욕먹기 싫어서 일부러 욕 먹을 만한 내용은 빼고 쓴 적도 있었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싶어서 나를 꾸며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 그것도 포털사이트와 같은 날것 그대로의 야생공간에서는 말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좀 더 진솔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비난과 욕설 중에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내 글에서 힘을 었다는 댓글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찬찬히 댓글을 읽어 보자. 수많은 댓글 중에 '나의 글을 통해 삶에 대한 자유스러운 자세를 얻었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기사가 나가고 며칠 후 , 기자님의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 이번에는 우리 동네에서 벌어진 '수돗물 유충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써 달라는 내용이다. 옆에 있던 남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댓글 읽고나서 몸져 누웠다고 말씀 드려 봐'


남편은 내가 악플 때문에 그 기사를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문자를 읽으면서 나는 이미 다음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사랑받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에서 이제 조금 자유로워지자 결정이 쉬워졌다.


'네 써볼게요'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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