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갑이 된 우리 큰 형부는 술을 마시면 우는 버릇이 생겼다. 주사 때문은 아니다. 그는 돌아가신 장인어른(즉 나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그렇다면 혹 효심 때문이냐 하면 그것도 역시 아니다. 형부가 우는 이유는 단지 그가 누군가의 장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형부와 큰언니는 크고 작은 부부 불화로 우리 부모님의 속 꽤나 썩인 인물들이었다. 둘의 부부싸움 현장에 출동한 우리 아버지에게 큰형부가 멱살을 잡힌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그 일을 빌미로 평생 장인어른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러던 그가 딸의 혼전 임신으로 갑자기 사위를 맞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큰 형부는 자식을 이길 수 없어 결국 결혼을 허락했는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사위의 경제적 무능력에서 비롯된 부부 갈등을 고스란히 목격해야만 했던 것이다. 혼전임신과 경제적 무능력. 이 두 가지 자식의 행적은 모두 자신의 지난 과거의 그것과 동일했다. 본인의 경우에는 우리 아버지가 등판했지만, 딸의 부부싸움에는 경찰이 왔다 갔다는 점만 달랐다. 그는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장인어른이 자신의 멱살을 잡은 이유를.
큰 형부가 꺽꺽 거리며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으이그 쌤통이다.다 자업자득이지 뭐.'라며 속으로 킥킥거렸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인과응보라고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나도 곧 큰 형부와 같은 꼴로 전락하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평소 '자식을 버려야 부모가 산다'는 논리에 심취해 있었던 우리 부부는 아이의 경제적 자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 4학년인 딸에게 마지막 학기의 학자금 대출을 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다. 남들은 다 해주는 등록금인데 대출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아이는 첫 직장생활을 대출금을 갚으면서 시작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아무래도 등록금은 당연한 부모의 의무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흙수저라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주식과 부동산과 비트코인으로 모두가 자산을 불려 간 이 판국을 스물세 살의 딸도 잘 알고 있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지 못한 초라한 부모를 원망하는 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부모가 부의 기회 놓쳐놓고 생뚱맞게 자신에게 학자금 대출을 권한다고 생각하는 딸의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흙수저는 맞다. 그러나 자식에게 그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큰 형부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꺼이꺼이 울던 그 모습처럼 울고 싶었다. 비로소 그때 내 나이 또래였을 우리 아버지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얼마나 차갑고 못된 딸이었나.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을 뿐, 나의 이십 대는 가난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서 뿜어 나오는 무언의 원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괴로움에 밤새 뒤척였을지도 모른다.
장인어른의 이름 첫 글자만 말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소주잔을 급하게 기울이는 우리 형부처럼, 부모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식이 부모의 삶을 이해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과욕일 수도 있다. 딸에게 아무런 변명도 해설도 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괴롭다.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면 내가 그렇게 비웃었던 우리 형부처럼 나도 아버지 묘 앞에서 목놓아 울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