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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민족의 영웅으로 그려낸 건조한 인간 찬가

우민호 감독, <하얼빈(2024)> 리뷰

by 새시

'안중근' 의사 혹은 장군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성스럽기까지 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안중근 의사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은 영웅으로서의 삶을 다루었다. 그에 반해, <하얼빈>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현빈 분)는 여러 실수를 통해 실패를 겪고, 그로 인한 고뇌에 사로잡히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을 행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다수 따름에도 기존 '안중근' 의사를 다룬 여러 작품과 차별성을 보여준다.


<하얼빈>은 '인간' 안중근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 인간 안중근의 실패와 고뇌

<하얼빈>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실패와 고뇌를 담았다는 점이다. 본 작품에서 ‘안중근’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다. 만국 공법에 의거하여 적장을 살려준다는 이상주의적인 판단으로 많은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버렸고, 일본어를 잘하지 못 하여 기차에서의 검문에서 걸리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패 속에서 그는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는 ‘안중근’이라는 신성한 존재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허나, 이러한 ‘안중근’의 인간적인 모습은 그를 더욱 위대하게 보이도록 한다. 수많은 죄책감과 시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꽁꽁 언 압록강을 홀로 힘들게 건너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그는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먼저 떠난 수많은 동지의 목숨의 무게를 지고 함께 살아가면서. 그렇기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의 시점을 하늘로 한 점이 건조하면서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준다.


영화 내내, 안중근은 인간적이다.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실패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죽음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명예를 위해 죽겠다고 외치는 모리 다쓰오 중좌(박훈 분)와 가장 다른 점이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안중근은 인간성을 지켰지만, 그렇지 않은 모리 다쓰오 중좌는 비인간적으로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을 다룬 점이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비장하게 변주한다.

- 한국 영화의 클리셰에 진중한 느와르의 색을 입히다

<하얼빈>의 이야기는 전형인 한국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패를 겪은 주인공이 이를 딛고 일어나 목표를 이루는 내용이며, 그 과정이 세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주인공을 도우는 동료가 2명 정도 존재하고, 약간은 애매한 비중의 여성 캐릭터가 한 명 등장하며, 주인공과 대립하지만 중요할 때 그를 돕는 인물이 존재하는 점도 많이 본 듯한 구성이다. 다소 뻔한 각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얼빈>의 연출은 전형적이지 않다. 비장한 느낌이 강한 첩보 영화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내내 빛의 사용을 절제하여 어두운 느낌을 준다. 이로부터 빚어진 비장함과 흔들리는 담배 연기 등 인물들의 흔들리는 심리를 묘사한 미장센은 관객들이 작품 내 사건에 강하게 몰입하도록 한다. 특히, 객실의 흔들림을 통해 밀정의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는 장면은 긴장감을 극도로 유발하여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장면이다. 이는 동료에 대한 믿음과 자기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은 영화 내내 보이는 굉장한 영상미와 만나 강렬한 비장함을 제공한다.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의 이야기만이 아닌 '인간' 안중근과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다.

- '안중근'을 통해 건조하게 그려낸 인간 찬가

<하얼빈>은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을 그려내며, 이를 비장하고 건조하게 그려낸다. 자신이 믿어온 가치가 흔들리고, 동료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 길을 잃었음에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목표를 이룬 그는 인간답게 두려워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그의 가치는 역시 같은 인간으로서 흔들렸던 동지인 ‘김상현(조우진 분)’에게 이어진다. 자신이 옳지 않을 수 있고, 흔들릴 수 있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안중근’의 극후반부 대사는 그렇기에 일종의 모든 독립투사들에 대한 ‘인간 찬가’로 느껴진다. 다양한 작품에서 그려진 영웅으로서의 그의 모습보다, 인간임에도 이를 넘어서 자신의 의를 행한 그의 모습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본 작품이 일종의 ‘인간 찬가’여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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