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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페인>, 실재하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간다

제시 아이젠버그, <리얼 페인(2024)> 리뷰

by 새시

<리얼 페인>은 할머니를 잃은 두 사촌이 할머니의 생가인 폴란드를 방문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촌의 여행기를 다룬 본 작품은 '홀로코스트'라는 소재를 통해 실재하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울고 웃기는 따뜻한 작품이다.

고통을 피해도, 맞서도 실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고통은 피하는 자와 맞서는 자 모두에게 실재한다.

<리얼 페인>은 각자의 고통을 겪고 있는 두 사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나, 그들이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은 다르다. '데이비드'는 고통을 회피한다. 강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며, '밴지'와의 만남을 오랫동안 유예한다. 이러한 모습은 여행에서도 보이는데, 오프닝에서 '벤지'가 늦을까 봐 계속 전화를 거는 장면과 사람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는 문제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극도로 회피하고자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벤지'가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상반된다. '밴지'는 고통에 맞선다. ‘데이비드’와 다르게 약을 먹지 않으며, 사람들과의 마찰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찰을 극도로 피하는 ‘데이비드’와 다르게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벅차한다. 자신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이는 극대화되어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려 한다.


두 주인공이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의 고통은 실재한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데이비드’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기에 이를 피하려는 것이고, ‘벤지’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하지 못한다. 이는 모두에게,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고통은 실재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한다. 그렇게 작품은 관객들을 때로는 ‘데이비드’에게, 때로는 ‘벤지’에게 몰입하도록 한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보다 중요한 것은 선의다.

-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영화 중반부, 주인공들과 일행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고통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논한다. ‘벤지’는 이러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옳지 못하다고 하고, ‘데이비드’는 모두가 그러한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영화는 이 두 의견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고통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후, 작품은 나치 독일의 절멸 수용소인 ‘마이다네크 수용소’를 방문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고통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데이비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을 겪으려는 ‘벤지’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벤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벤지’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통을 외면하려는 ‘데이비드’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가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 할머니가 약속에 늦은 자신에게 뺨을 때렸을 때 좋았다던 ‘벤지’의 말을 기억한 ‘데이비드’가 ‘벤지’의 뺨을 후려치는 장면인데,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이 장면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서로를 위하는 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난 장면이다. 이렇게,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영화는 ‘선의’란 답을 제시한다.


<리얼 페인>은 여행 끝에 성장을 겪어 고통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 여행의 결과물은 성장이 아닌 연대의 확인.

<리얼 페인>의 두 주인공은 여타 성장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드라마틱한 성장을 겪지는 않는다. ‘데이비드’는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벤지’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공항에 남는다. 이는 고통은 짧은 여행으로 쉽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의 메시지이다. 허나, 그들은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였다. '데이비드'는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가져온 돌을 자신의 집 앞에 놓는다. ‘벤지’는 자신의 있을 곳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의 지적처럼 그는 갈 곳을 잃고 공항에 남아있다. 허나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약간의 웃음을 보인다. 자신의 뿌리이자 연대였던 할머니를 잃었었지만, ‘데이비드’와의 연대를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리얼 페인>은 실재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주인공이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 상반됨에도 고통은 실재하며, 평생 동안 고통 속에 살아갈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선의와 함께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큰 위로가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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