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 리뷰
0. 신화는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다. 신화는 인간의 존재 이전을 다룬, 말 그대로 ‘신적 존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화의 끝에는 인간이 신에게서 자립하는 순간이 담길 수 밖에 없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이러한 신화의 끝을 장엄하게 담아낸 명작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죽음’은 서사의 근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요소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서사의 흐름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오크들의 포위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놓인 ‘피핀(빌리 보이즈 분)’과 ‘간달프(이안 멕켈런 분)’의 대화에서 언급된 ‘죽음은 여정의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라는 관점이 있다. 이는 ‘죽음’이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는 시선이다. 이는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 중 로히림(로한 기병대)의 진군 직전 세오덴(버나드 힐 분)의 연설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죽음으로(Death!)’라는 내용의 연설은 비록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지만 이러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도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는데, ‘데네소르 2세(존 노블 분)’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작품은 이러한 그의 죽음을, 영화에서는 묘사되지 않은 그의 유능함과 상반되게, 다소 우스꽝스럽게 묘사함으로서 이를 잘 보여준다.
2. 이러한 죽음에 대한 시선은 일종의 인간 찬가이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대상에서 오는 공포를 인지함에도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본 작품의 서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자인 인간이 악과 맞서 이겨내고 그들의 세상을 개창하는 이야기이다. 부제인 ‘왕의 귀환’에 맞춰 인간인 ‘아라고른 2세(비고 모텐슨 분)’이 '반지전쟁' 이후 찾아올 제4시대 '가운데땅'의 최강국이 되는 '곤도르'를 통치하는 왕으로 돌아온 것은 이러한 인간 찬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3.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는 마치 신화 속 이야기 같은 부분이 상당수 보인다. 다수 등장하는 전설적인 영웅들은 이러한 신화적인 느낌을 대표하는 부분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말도 안 되는 일들과, 엄청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일들을 어렵지 않게 도전하고 해낸다. 작중 마지막 전투인 ‘모란논 전투’에서 반지를 운반 중인 ‘프로도(일라이저 우드 분)’와 ‘샘와이즈(숀 애스틴 분)’가 적진 한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매우 높은 확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감수히는 부분과, 평범한 호빗이었던 ‘샘와이즈’가 단신으로 전설 속 괴물인 ‘쉴로브’를 물리치고 오크 요새 ‘키리스 웅골’을 단신으로 무너트리는 부분 등이 이러한 신화적 느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4. 이렇게 작품 속 스며들어있는 신화적 느낌은 앞에서 언급한 인간 찬가과 함께 신화의 마무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반지의 제왕>이 속해 있는 ‘레젠다리움’ 세계관은 저자 ‘J.R.R. 톨킨’이 영국에 신화가 부재함을 안타까워 하며 만든 일종의 대체 신화이다. 설정 상 ‘가운데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과거 모습이다. 즉,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이전의 신화적 세계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간 찬가는 ‘일루바타르’라는 세계관 속 절대자가 창조한 두 번째 자식인 인간이 마침내 가운데땅의 주인공의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이 기록할 역사의 시작을 상징한다. 즉, 신화의 마지막인 것이다. 작품의 이야기가 ‘빌보(이안 홈 분)’와 ‘프로도’가 서술한 ‘붉은 책’의 구절이라는 점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THE END’라는 구절로 끝나는 점은 신화의 끝이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5. 그러한 점에서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는 이러한 신화의 후반부를 더욱 비장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악과 억압에 저항하는 자유를 향한 선의 의지를 담고 있는 본 전투는, 소위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 가득하다. ‘로한’에 전달되는 ‘곤도르’의 봉화부터, ‘세오덴’의 연설과 함께 ‘오르크’에게 돌격하는 ‘로하림’, ‘사우론’의 군대를 해치우는 ‘죽은 자들의 군대’, 자신이 남자가 아님을 외치며 ‘마술사왕’을 해치우는 ‘에오윈’ 등이 그것이다. 자유민 세력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등장하는 이러한 극적인 장면들은, 전투 장면의 높은 완성도와 함께 위대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굉장한 비장미를 전달한다.
6.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가운데땅’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라는 절대적 공포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통해 인간 찬가를 노래하며, 이를 통해 신화의 끝을 그려낸 명작이다. ‘가운데땅’의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우면서도, 이 이상의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는 확신이 들도록 하는 경외로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