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위선적 정의를 행하는 진심이 낳은 허무

요르고스 란티모스 <부고니아(2025)> 리뷰

by 새시

0. 과거 유럽에서는 꿀벌이 죽은 소의 몸 속에서 자연발생한다고 믿었고, 이러한 믿음에서 꿀벌을 만들어내고자 죽은 소의 시체를 이용하여 의식을 치루었다. 본 작품의 제목인 ‘부고니아’는 이러한 의식을 의미한다. 아마 죽은 소의 몸 속에서 우연히 꿀벌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잘못된 믿음이 퍼져나갔을 것이다. 본 작품 <부고니아>는 각자가 가진 정의로 빚어진 진심이 이러한 잘못된 믿음을 활용하며 만들어낸 허무를 다룬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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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의 두 주인공 ‘테디 게츠(제시 플레먼스 분)’과 ‘미셸 풀러(엠마 스톤 분)’ 모두 각자의 위선적인 정의를 가진 인물들이다. ‘테디’는 지구의 꿀벌이 없어지는 것은 외계인이 지구를 망가트리려는 일련의 방법 중 하나라며, 이로부터 세상을 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의를 위해 그는 외계인들을 식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납치하고 살해한다. 그는 인류를 위해 이러한 행위를 한다고 자위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망가진 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영화가 진행될 수록 드러난다.


2. ‘미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지구에서 인류 멸망을 막았던 외계 문명의 황제로서, 그는 ‘폭력성’이라는 유전적 결함이 있는 인류를 재구성하여 포기하지 않고자 한다. 인류를 단 한 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음에도 이를 주저했던 것은 그가 생각했던 정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테디’의 엄마를 포함한 10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개조 실험을 진행했고, ‘테디’의 엄마는 그로 인해 혼수 상태가 되고 만다. ‘미셸’은 ‘테디’에 대한 보상으로 이를 ‘살충제 부작용’으로 위장한 후 금전적 지원을 행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위선적 정의’를 보여준다. ‘미셸’에게 전기 고문을 한 이후 진행되는 ‘테디’와 ‘미셸’의 식사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인데, ‘테디’가 어머니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미셸’은 더 많은 물질이 필요했었다며 후회한다. 이는 가족의 존재가 물질로 대체될 수 있다는, 마치 초반부 ‘5시 반’ 퇴근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선심을 썼다는 믿음과 같은 위선적 정의의 표상이며, 인류의 폭력성을 유전적 결함으로 규정하여 멸종시키는 것은 이러한 위선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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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들이 이러한 위선적 정의로 쌓아올린 진심들은 그래서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테디’는 망가진 자신의 삶이 가지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타인을 해하였고, ‘미셸’은 인간에게 ‘폭력성’이 있다는 이유로 실험을 자행하였으며 동시에 이를 물질로 보상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영화는 이렇게 사람의 진심은 서로에게 완벽하게 전달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이들은 각자 가진 정의 혹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이는 적든 많든 위선을 필연적으로 포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정의감 없이, 유일하게 순수한 진심을 가지고 있었던 ‘돈(에이단 델비스 분)’이 이러한 진심을 ‘테디’에게 전하지 못한 채 죽음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사실에서 오는 극복할 수 없는 허무함을 보여준다.


4. 이렇기 때문에, 영화의 파국적인 결말은 각자의 정의와 신념에 따라 진심을 가지고 ‘지구를 지키는’ 이들이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허무함의 극단적인 표현이다. 영화는 결말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죽음을 맞은 모습을 나열한다. 이는 노동, 각종 유희, 일상, 섹스 등 다양하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가 가진 스산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동시에, 지구 역사에 여러 번 있었던 대멸종을 연상시켜 언젠가 인류도 지구에서 멸종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허무함을 극대화한다. 결국 영화는 결말을 통해 인류가 없어도 지구는 존재하기에 우리의 존재가 허무함을 띤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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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고니아>는 수많은 상징성과 많은 철학을 내포한 작품임에도, 간소화된 이야기와 무대를 통해 이를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이렇게 위선적 정의가 어떻게 잘못된 믿음을 활용하는지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인상적인 결말을 통해 삶이 가진 허무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챕터 시작 부분에 나오는 평평한 지구처럼, 너무나도 엉뚱한 설정과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담론이 작품의 분위기를 규정하지는 않게 하여 마냥 기분 나쁘지는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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